엄마에게

설날

by MSG윤결






엄마, 벌써 12번째 편지네요.

이만큼 썼으면 내 마음도 좀 편해졌을까 싶었는데, 글쎄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앙금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무겁기만 해요.


남들에게 가족은 진짜 가족이던데, 나한테 엄마는 가족이라기보다 그냥 '각자 다른 사람들' 같아요.


이번 설 명절에 우리 가족 10명이 다 모였잖아요.

아 언니네 부부는 빼고요.

고기 구워 먹으면서 웃고 떠들 때는 '우리가 이렇게 다 모여 있구나, 참 대단하다' 싶어서 나름 행복하기도 했거든요.


근데 엄마, 나는 봤어요. 아빠가 무슨 말만 하면 엄마가 아빠를 흘겨보던 그 눈빛요.

평소엔 안 그러다가 왜 또 그러는 건지, 아들 내외가 있어서 그랬던 걸까요?

아빠가 헛소리를 한다며 눈을 흘기고,

아들에게 말할 때마다 아빠를 무시하듯 쳐다보는 엄마를 보는데...

정말 그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예전에 느꼈던 그 공포가 확 살아나더라고요.

그동안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내 마음 좀 다스려 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어요.

가족이 다 모여서 고기를 굽고, 먹고, 웃고 있어도, 그 식탁 밑으로 흐르는 엄마의 서늘한 감정 때문에 숨이 막혔어요. 엄마에겐 찰나의 눈짓이었겠지만, 나한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강제로 깨우는 신호였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을 보며 생각했어요.

'우리는 언제까지 행복한 척 연기를 해야 할까.'

10명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구워 먹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텅 빈 것처럼 허전하더라고요.

노력하면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엄마의 그 눈빛 하나에 내가 쌓아온 결심들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참 허망했어요.


엄마, 우리는 언제쯤 진짜 가족처럼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12번이나 편지를 썼는데도 여전히 답을 모르겠어서, 오늘은 유독 더 힘든 것 같아요.


우리가 편해질 순 있을까요?

편해지긴 할까요?


그냥 밖으로 보이는 가족으로만 살아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