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댔어

무식한 건 나야 나.

by MSG윤결





진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하나 틀린 거 없다.



처음 창업하겠다고 나섰을 땐 이미 사고를 칠 대로 친상태였다.

멀쩡한 직장 관두고, 집 이사하고... 몇 년 카페에서 일해보고 배워봤으니 이제,

"나만의 가게"를 차리자!라는 평생의 꿈에 취해 있었다.


근데 막상 시작하려니 앞이 캄캄했다.

인테리어의 ‘인’자도 모르고, 집기는 어디서 사는지,

사업자등록증은 또 어디서 주는지... 영업신고도 해야 한다는데 어디 가서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엔 친절한 ‘오지라퍼’들이 널려 있었고,

그분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 보면서 하나하나 구걸하듯 배워나갔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도움받아 가며 처음 한 게 ‘상가 계약’이었는데,

아... 이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상권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부동산 아저씨 말만 믿었다.


"앞에 아파트 입주 시작하면 여기 장난 아니에요. 사람 터져 나갈 겁니다."


그 말만 믿고 미용실 하나, 육개장 집 하나 있는 휑한 동네, 이제 막 시작한 신도시에 카페를 차리겠다고 덤볐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미친 짓이었다.


인테리어는 또 어떤가,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인테리어 업체 미팅을 잡았으니 뒤통수 맞을 수밖에.

업체 포트폴리오 보면서 대충 아는 곳이랑 끼워 맞추기를 하다가 결국 ‘아는 사람’한테 맡겼다.

"아는 사람이 더 잘해주겠지"라는 그 안일한 생각.


그 결정,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한다. 무지함의 대가는 혹독했다.

14평짜리 좁아터진 매장에 공사 대금은 어마어마하게 깨졌고, 결과는 부실공사 때문에 고생고생...

최소 2, 3천만 원은 그냥 공중에 뿌린 셈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것도 다 배우는 과정이다,

다음엔 안 이러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며 일어났다.

그 와중에 집기류만큼은 직접 발로 뛰어서 맞춰왔는데, 그때 느낀 전율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진짜 지옥은 그때부터였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나도 대한민국 카페 시장에 창업 사장으로 첫발을 내딛는 날이 오게 되었다.

오픈식을 하기 일주일 전, 매장 레시피를 잡아가던 날 매장에 손님분들이 한두 분 들어오셨다.

그때가 여름 즈음이어서 엄청 더울 때 그 동네에 카페가 없어서

아마 지나가시던 분들께서도 장사하는 곳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들어오신 분들을 내쫓을 순 없고 아직 포스 준비가 안 되어있던 우리는 손님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돈 안 받을 테니 시음 좀 해달라며 커피를 내어드렸다.

메뉴판도 없어서 받을 수도 없었지만, 그냥 그 무더위에 고생하시는 게 안쓰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왜 안 받느냐고, 손님들은 미안해했지만 메뉴의 가격표도 없던 우리는 받을 수도 없었고

너무 더웠던 날이었던지라, 손님분들을 밖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그중 한 손님이 다 드시고는 100위안짜리 중국 지폐를 쑥 내미셨다.

같이 온 중국 지인이 너무 잘 마셨다고, 꼭 대박 나라고 전해 달랬단다.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쳐도 "오픈 전에 이런 따뜻한 마음 나누어줘서 고맙다" 며 기어코 쥐여주고는 중국어로 "파이팅!"을 외치며 가셨다.

그날 그 지폐 한 장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그 힘으로 드디어 오픈. 현수막 하나 달랑 걸어놓고 "과연 누가 올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동네에 드디어 카페가 생겨서 좋다고 찾아주셨다.

기분 좋은 하루였지만, 나를 제일 당황하게 만든 건 손님이 아니었다.


"사장님~ 여기 마케팅 업체인데요, 검색 1위 노출해 드립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마케팅 전화. 와 기가차게 전화가 온다, 그래서 죄다 거절했다.

또 "맛있으면 입소문 날 거고 찾아오겠지"라는 나름의 뚝심이 있었다.


원래, 카페라는 건 한 군데가 생기면 그 주변에 분명 또 생긴다. 왜냐?

우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니까, 나눠먹기를 해야겠으니까,

오픈한 지 3개월 만에 바로 옆 옆 건물에 누구나 다 아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기더니,

오픈 5개월 만에 중형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카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간에 저희 매장이 딱 끼어있는 채로 말이다.


그래도 도저히 나를 못 버티게 만든 건, 저가 커피다.


그래도 어찌어찌 코로나까지 잘 버텼다.

가끔 손님들이 묻는다.


"사장님,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들은 왜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어요?"

"줄 서서 먹는 집들은 막상 가면 왜 기대만큼 맛이 안 되는 걸까요??"


이유가 궁금하신가? 에이, 다 아시면서.

뭘 굳이 물어보는 건지... 그래도 가는 사람들은 대형베이커리카페만 갈 거면서.



그날 이후로 어느덧 9년이 흘렀다.


난 아직도 카운터에 100위안 지폐가 있다.

꼭 그 지폐가 나를 버티게 만들어 주는 것 만 같다.


죽을 만큼 버티고 버텨서 꼭 성공할 거다. 난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