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구려병에 걸린 식신

by 윤해

제 어릴 적 꿈은 작가였습니다


그 시절 책 보다 좋은 세상이 없던 저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책을 읽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였을까요?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 졌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주신 일기 숙제가 시발이었을 수도, 교내 백일장이 깨달음의 어떤 시작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 낸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밤새도록 소설을 쓰곤 했는데, 당시 언니와 방을 같이 썼던지라 그런 날에는 NNNN차 '자매대전'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무릇 자매 싸움이란 아묻따 머리채부터 잡는 것이 국룰인지라 머리카락이 소중해진 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스탠드를 끌어안고 창작의 고통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보통 창작물 출간의 과정을 출산의 고통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아마 안의 무언가를 세상밖으로 꺼내는 작업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주 명리학에서는 이런 개념을 식상(식신과 상관)으로 연결시킵니다.

인성(印星)이 나라는 일간(日干)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엄마라면 식상(食傷)은 나(일간)에서 비롯되는 자식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요.


식상은 자녀의 출산, 양육을 비롯하여 제품의 생산, 디자인, 글쓰기, 요리, 지식을 전달하는 아나운싱 혹은 강의 등 여러 활동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식신과 상관을 또 세분하자면 식신(食神)은 식도락, 글쓰기등으로, 상관(傷官)은 비판적 말하기나 기존 제품을 유니크하게 리뉴얼하는 능력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이렇게 나(일간)를 표현해내고자 하는 활동은 인성으로부터 제약을 받게 되는데요,

말하자면 집에서 과보호받는 나(일간)의 활동을 엄마가 일일이 좇아다니며 잔소리하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엄마(인성)는 내가 집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취미활동을 하고, 연애를 하느라(재성의 활동) 공부를 등한시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건 눈물 나게 속상하고 섭섭해도 뭐라 말하지 못합니다(재극인-재성은 인성을 극한다).


엄마는 내가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크게 승진을 하면(관성의 활동) 집안을 일으킬 인재가 났다며 칭찬(관인생-관성은 인성을 생한다)하지만, 집안의 모든 활동들은 잔소리의 대상이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엄마를 위한 요리를 해도 재료구매에서부터 설거지까지 잔소리를 듣는 뭐 그런 모습이랄까요?


그러니 일간옆에 식신과 인성을 함께 둔 저는 움직일 때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습니다.

작가의 꿈을 가졌던 그때도 마찬가지로 글만 쓰려고 하면,

"얘야, 그런 글로 되겠니? 주제가 너무 편협하지 않아? 이 비문 어쩔 거야? 이렇게 글 써서 남들한테 보이면 창피하지 않겠어? 공부 좀 더하고 해야 되지 않겠니?"


작가의 꿈을 꾸었던 식신은 글을 쓸 때마다 "하아~ 내 글은 정말 구린 것 같아"하며 글쓰기를 멈추게 되고, 애써 완성된 작품조차 화로에 넣어 태워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작품이 남아 있다면 보고 수치사할 것 같아 존재하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내 글 구려병'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식신이 용기내어 글쓰기를 시작한 지금, 인성에게 말합니다.

"엄마, 상처를 받을수도 있고 생각보다 더 내 글이 엉망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인성이 식신에게 말합니다.

"그래, 우리 천천히 멀리 보고 한걸음씩 가보자. 엄마는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어"


또 어느 순간 엄마의 걱정어린 잔소리가 들리고, 내 글은 정말 구리다는 '내 글 구려병'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그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은 한 번 또 저질러 보겠습니다.


그게 또 진정한 식신의 모습이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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