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회사의 직원 한분이 탕비실 싱크대에서 양치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바쁜 시간 화장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양치하는 게 불편하다며,
급한 대로 싱크대에서 양치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탕비실에서 식품을 조리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몇 번 물컵이나 텀블러 세척할 때만 이용하고 있으니 양치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이고 불편했습니다.
저에게 싱크대는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곳,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명확했던 거죠.
그렇다고 제가 깔끔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주신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지난 3개의 글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했듯이 저는 게으를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게으른 사람이 깔끔해봐야 얼마나 깔끔하겠습니까?
청소하기 싫으니 어지르지도 않을 뿐인 거죠.
평소에는 "에유~ 그럴 수 있지~ 사람 일 모르는 거야"를 외치며 살다가, 한 번씩 스위치가 ON/OFF 되듯 까탈스럽고 예민하게 구는 이유, 무엇일까요?
바로 제 사주 여덟 글자 중 하나인 신금(辛金) 때문입니다.
신금을 물상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누구는 바늘을, 누구는 정밀한 기계를, 누구는 날카로운 쇠붙이를 떠올립니다.
저는 신금을 보면 항상 중세 배경의 게임 속 날카롭게 세공된 보검이 떠오릅니다.
깔끔하고 세련되고 날카롭고 섬세합니다.
공과사의 구분이 확실하고 군더더기 없이 자기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합니다.
디테일에 강하고, 그만큼 총명합니다.
신금의 기운이 강한 사람, 혹은 신금일간인 분들 중 의료계 종사자가 많다는 것은 이러한 신금의 성격 때문이겠다 생각합니다.
저는 신금의 기운이 강한 사주는 아니지만, 신금은 내(일간) 옆에 바로 붙어 있는 중요한 기운입니다.
식신이 저의 행동대장이라고 한다면, 신금은 제 책사(策士) 혹은 참모(參謀)의 역할을 합니다.
이 신금의 날카로움이 번뜩일 때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를 괴롭힐 때도 있고, 필터 없이 다른 사람에게 독설을 날려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날카로운 신금이 제게는 무한한 애정을 주는 '정인'의 역할을 합니다.
지난 글들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성은 어머니로 비유될 수 있으며, 인성(정인, 편인) 중 정인은 특히나 더 어머니의 물상과 일치합니다.
그런 정인이 이렇게 날카롭고, 타인에게 혹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신금이라니 재미있지 않나요?
이건 "정인"이라는 키워드가 내 일간 임수와 신금의 관계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사주 속 신금은 엄마의 역할을 하지만, 기토일간에게는 식신의 역할을 합니다.
어쩌면 기토일간에게 신금 식신은 촌철살인의 글로 표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주팔자라고 하는 사주의 여덟 글자는 각 글자 본연의 특성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일간(나)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주안에서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그 글자의 특성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죠.
명리학에서 여덟 글자의 특성과 글자들 간의 관계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해석하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사주 여덟 글자 안에서도 이럴진대, 사람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복잡한 여덟 글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정의 내리거나 평가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건 관계성의 문제인 거죠.
그렇다고 내가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한다면 그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노력에 지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주 여덟 글자 안에서 각 글자 하나하나가 정체성을 잃지 않듯이, 사람사이에서도 서로가 어떤 의미가 되든 간에 각각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안의 빛나는 신금이 그러하듯 타인에게 빛나는 사람이냐가 아니라 스스로를 빛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그게 제가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