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공평한 인생
60대 중반까지 살면서 인생을 좌우하는 법칙은 ‘운칠기삼’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를 정하는 것은 70 퍼센트 이상의 운에 달려있다. 나는 운이 아주 좋았다. 요즘에는 이란이나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부모님과 달리,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6.25 전쟁이 끝난 후 1960년대 초에 태어난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가난에서 벗어나 초고속 압축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한 것도 큰 행운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2-3 세대에 걸쳐 일어날 변화를 당대에 목격하고 체험했다. 이것은 대학에서 법사회학과 비교법을 연구하고 가르친 나에게는 특히 의미 있는 경험이고 귀중한 자산이다. 정년퇴직 후, 중국 대학에서 나를 정교수로 채용한 것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직업을 가질 수 있던 것은 내 능력이나 노력보다 ‘운칠기삼’의 법칙 때문임을 일찍이 자각했다. 그래서 나만큼 운이 좋지 않은 이들을 가능한 도우려 했다. 내 주변에 가장 많은 이들은 학생이었기에 학생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나 NGO 활동가들도 나름 열심히 후원해 왔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받은 행운에 대한 부채의식을 조금이라도 경감하고 마음이 편했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부모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서울에서 함께 사회 활동을 한 어느 대학교수가 식사 자리에서 해 준 이야기는 내게 충격이었다. 지리산 산골이 고향인 그는 책을 손에 쥐고 있으면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고, 빼앗긴 책은 아궁이 불소시개가 되었다고 했다. 몰래 책을 보다 들킬 때는 아버지가 모질게 때렸다고 했다. 촌에서 농사짓고 소를 키워야지 책을 읽으면 헛바람이 들어 도시로 나가려 한다는 이유가 그의 부친이 책을 못 보게 한 이유라고 했다. 그는 10대 초반에 몰래 가출하여 대도시에서 혼자 온갖 고생을 하며 주경야독하여 법학교수가 되었다. 나는 그가 나보다 한 살 위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다 같이 한국에서 태어나 거의 동시대를 살았는데 산골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와 대도시에서 태어난 나는 참 많이 다른 인생 행로를 걸었다.
내 딸아이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딸이 따졌을 때, 내가 한 변명은 이랬다. “네 유학비용은 아빠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너를 유학 보내려면 아빠는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고, 대출금을 갚으려면, 하기 싫은 연구용역을 따내서 연구비를 준 기관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넌 아빠가 그렇게 살아야겠니?” 내 변명에 수긍하지 못한 딸아이의 마지막 항변은 “할아버지는 아빠 미국 유학을 보내줬는데, 왜 아빠는 날 안 보내주는 거야?”였다. 이 질문에 내 대답은 “너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모르지? 난 아버지를 잘 만났고, 넌 잘못 만나서 그런 거야!”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유학이라도 보내달라고 딸아이가 간청할 때도 내가 같은 이유로 거절해서 딸아이는 결국 유학을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 딸은 지리산 산골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버지 운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내 딸아이에게 인생은 이렇게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