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바람 May 04. 2022

쑥. 떡. 쑥. 떡 이야기

봄과 살림남의 콜라보

  남편은 살림남이다.

흉내만 내는 살림남이 아니라 진짜로 살림남의 우수한 DNA를 가지고 있으며 소소히 살림을 즐기고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1순위는 요리 관련 프로이다. 2순위는 축구 예능.

나의 원성을 들으며 보고들은 요리 프로그램에서 배운 요리를 직접 해보는 것이 하나의 취미라고도 하겠다.

남편은 결혼 직후 주말부부 2년 동안 신혼집에서 혼자 지내며 살림을 하였고 나는 동생들과 지내던 지방의 아파트에서 지내며 주말에만 올라와 반은 손님처럼 지내곤 했다. 남편의 자취 경력은 역사가 꽤 오래되어서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고 몇 년 후 다시 시작된 주말부부 생활도 어느덧 10여 년이 넘어가고 있다.

남편이 혼자서 간단한 반찬도 잘 만들어 먹으니 세심하게 챙겨 보내지 않다가 이제는 점점 혼자서 뚝딱거릴 남편이 안쓰럽게 생각되어 몇 끼 먹을 국과 반찬을 챙기는 것이 월요일 아침의 루틴이 되었다.

반면 나는 단수가 없는(살림은 왜 9단만 있는지^^) 평균치의 주부이다.

살림에 관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언제나 '효율'을 우선시한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주말에 남편이 가져온 아이스 백(국과 반찬을 담아가는)의 빈 그릇을 꺼내려니 비닐 봉투 안에 적지 않은 양의 쑥이 들어있었다.

나는 묻지 않고도 상황 파악이 되며 남편이 캔 쑥임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의 기계 작업장이 있는 곳 앞에 논이 있으니 아마도 그 논두렁에서 또 다른 작업(?)을 해온 것이었다.

나도 봄이 되면 왠지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이름도 모르던 나물을 캐던 추억이 생각나서 어디 들에 나가 나물을 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추억의 행위를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거지 나물을 캐는 것이 주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남편은 주목적인 쑥을 많이 뜯어 왔다.

"와! 쑥국 끓여 먹으면 맛있겠다. 나도 쑥국 좋아하잖아~"

내가 하는 말에 남편은 반색을 하며 쑥을 엄청 많이 뜯을 수 있으니 떡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에이~ 그건 좀 참아! 이만큼이면 충분해"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여 주말 내내 먹고도 데친 쑥이 남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남편의 살림남 DNA가 살아 있음을 깜박하고서...


  며칠 전 남편이 전화로 무심히 물었다.

"어떤 종류가 좋아? 쑥떡"

"아이들이 구워 먹는 거 좋아하니 절편이 좋겠지?"

설마 진짜 떡을 하지는 않겠지...

그날 평일임에도 집에 온 남편의 양손에는 쑥떡 두 상자가 들려있었다. 

쑥 인절미 한 상자와 쑥절편 한 상자.. 하하하!

순간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선 나는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는 빈 공간을 계산하면서 내가 중요시하는 '효율'과는 어긋난 남편의 떡 상자를 환영해주지 못했다.

그만큼의 떡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쑥을 뜯고 다듬고 데치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많이 했냐며 타박 먼저 하는 나의 반응에 남편은 예상한 반응이라며 무던히 넘어갔다.

철없는 아내라고나 할까..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다.


동료들과 간식으로 먹는다고 챙겨간 떡이 아마도 인기가 있었나 보다.^^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단지 남편의 살림남 DNA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라고 왜 번거롭고 귀찮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남편은 그 힘든 걸 해내고 즐거워했다.

봄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눈앞에 펼쳐져있어서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 걸 (쑥을 뜯는 일) 하는 동안 즐거웠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즐거움 뒤에 쑥을 다듬고 데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그건 또 가족이 맛있게 먹는 걸로 수고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긴 겨울을 견디고 땅의 기운으로 올라오는 봄의 먹거리들은 다 향기를 품고 있다.

쑥, 냉이, 달래, 두릅...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어쩌다 시골 시댁에서 보게 되어도 '벌써 봄이구나'생각만 하지 그걸 캐거나 뜯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봄의 먹거리를 가져올 때 남편은 직접 뜯은 쑥으로 떡을 맞춰오는 정성으로 올봄에 좋은 기억을 주고 봄을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로는 나보다 소소한 살림에 더 능력자라 질투 어린 타박을 한적도 있지만 올봄의 쑥떡 이야기로 더 이상의 타박보다는 남편을 추앙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내년 봄에는 나도 남편과 같이 쑥을 뜯을지도 모르겠다.

냉동실에서 꺼내 녹인 쑥떡의 향기가 진하다.

올봄 남편의 살림남 DNA와 봄의 콜라보로 누리는 즐거움.

작가의 이전글 기억 속의 아빠와 카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