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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Apr 26. 2022

기억 속의 아빠와 카메라

책과 나 1.   박완서 <카메라와 워커> 리뷰

 박완서 님의 소설집 <기나긴 하루>에 실린 1975년 작 '카메라와 워커'를 읽고  나의 어린 시절과 아빠가 떠올랐다.

소설의 내용은 박완서 님의 다른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듯이 6.25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다.

한국 전쟁으로 아들과 오빠를 잃고 갓난 손자 또는 조카를 키워 그 손자가 대학을 졸업하게 된 70년대 중반의 시절에 그 시대 어른들이 생각하는 안정된 생활을 카메라로 상징화하고 있다.

즉, 조카가 결혼을 하고 휴일이면 카메라를 메고 가족들과 야외로 나가 휴일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의 조카는 대학 내내 방황을 하고 자신의 미래에 희망을 품지도 못한 채 계약직 측량기사로서 워커를 신고 흙바람 속에 일하는 것으로 대비시키며 두 가지를 상징화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소설 속의 고모가 생각하는 카메라의 의미가 나의 아빠에게도 같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고단한 직장생활 속에서 가장의 무게로 힘들었을 아빠가 어느 날 갈색의 가죽 케이스에 담긴 중고 카메라를 가지고 퇴근하셨다. 은색의 손잡이를 돌려 필름을 감는 상표가 잘 기억나지 않는 일본산 카메라를 아빠는 윤이 나게 닦고 기름칠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은 휴일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우리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자"

기분이 들떠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모두 몰랐다.(수리한 카메라가 오작동만 계속할 줄은 ㅠ.ㅠ)

작은 읍내의 동네 근처를 돌며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다 기억나지 않지만 또렷이 생각나는 모습은 어느 부잣집 담장 밖으로 늘어진 덩굴장미와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는 나와 동생의 모습, 그리고 활짝 웃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아빠의 모습이다.

내가 그 당시 국민학교 4학년 정도였으니 이 소설이 발표되던 시기와 묘하게 비슷하다.

그 당시는 중요한 날에나 사진을 찍고 학교 소풍이나 운동회에도 사진을 돈 받고 찍어주는 아저씨들이 출장을 오던 시기였기에 아빠는 우리 남매를 찍어주시며 은근 뿌듯하셨으리라......


 소설 속 할머니와 고모가 조카의 안정과 행복의 상징물로 카메라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그 카메라는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멋진 사진을 주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 아빠는 그 카메라가 중고이기는 하나 좋은 거라며 여러 방면으로 수리를 의뢰해보았지만 고치지 못해 실망하셨었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우리가 다른 카메라를 가졌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의 서랍에는 아빠의 다른 카메라가 고장이 난 채로 들어있다.

큰 아이 출산 후 아이를 찍어주기 위해 아빠의 카메라를 빌려왔는데 곧 고장이 났고 그 후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면서 수리를 미루다가 돌려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 카메라는 주인을 잃고 내 서랍 속에 있으면서 때로는 슬프게 가끔은 사무치게 아빠를 기억나게 한다.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빠!

 카메라를 볼 때면 젊은 날의 아빠가 카메라를 메고 나가 어린 자식들을 찍어주신 그 마음이 고맙고 아프다.

다시 담쟁이 장미의 계절이 다가오고 이 소설을 읽으니 아빠가 더욱 그립다.

하늘에서 혹시 멋진 사진을 찍으며 웃고 계시진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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