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2. 독서가 없다면 지루했던 5월
작년 한 해 동안은 열심히 읽었었는데 점점 도서관 대여일을 연장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나는 도서관에 가면 먼저 사회과학 서가에서 한 권을 고르고 역사 서가에서 한 두 권 , 마지막으로 소설 서가에서 또 한 두 권을 골라온다. 집에 와서 읽는 순서는 소설, 역사, 기타 순으로 읽기가 쉬운 순이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깊이가 없는 독서인이 대부분 그러하듯 유명세에 의존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덧 붙여 초판을 벗어난 책인지 슬쩍 들쳐 보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작년에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기획이 참 괜찮다고 느껴서 나도 나의 독서를 기록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다방면의 지식이 얕은 자로서는 쉽지 않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한번..'이란 말에는 엄청난 자신감이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의 5월 독서기록은 [저도 읽어 보았습니다]라는 독서 리뷰라기보다는 경험담으로 쓴다.
1. 내가 아직 아이였 때/ 김연수/ 문학동네(2003)
이름은 익숙한 작가였지만 책을 읽은 적은 없고 솔직히 여성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는데 연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문장들이 너무 유려하여 마음을 빼앗겼다. 전 달에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요즘 젊은 작가는 이렇게 쓰는구나.. 이렇게 어렵지 않게 그리고 감각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필력에 감탄하고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놀랐었는데 김연수 작가의 이 소설 속 문장과 표현들이 그아먈로 내 취향저격이었다.
'가을이 깊어졌다. 교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완연히 달라졌다. 가까이 심어 놓은 키 작은 단풍나무 덕분에 수도가 그 그늘 아래서 노란 주전자에 물을 받노라면 물 색깔이 울긋불긋했다.'와 같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무 위키에 좀 더 검색해 보았더니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고 포기하기도 하고 반대로 독자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고 쓰여 있어서 뜨끔하기도 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아서....)
이 작품이 나온 건 2003년도이고 작가는 그 후에도 쉬지 않고 책을 출판했으니 기회가 되는 데로 읽어 보아야겠다. 자전적 내용을 담은 이 연작 소설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본질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서 만들어졌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소설의 문장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개인은 시간과 에피소드와 감정의 날 것에 이성으로 다듬어지고 과거로부터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이 있다.
수 없이 저장되었다 사라진 기억들 속에서 쨍하고 남아 앗는 순간순간, 그 조각들을 맞추어 자신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을 더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이야기이다.
2. 명화 독서/ 문소영/ 은행나무(2018)
작가의 [그림 속 경제학]이라는 책을 수박 겉핥기로 읽은 적이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예술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해박한 해설에 감탄했었다.
[명화 독서]는 고전문학과 그림의 만남이다. 책의 부제처럼 그림으로 고전을 읽고 문학으로 인생을 읽는 책이다. 6개의 챕터에서 약 30개의 고전 작품을 소개하고 책과 연관된 그림, 또는 그림이 먼저이고 아마도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책의 장면을 보고 전문가의 해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읽어본 작품은 대략 반 정도...
책의 가장 첫머리에 소개하는 '카르페 디엠' 주제시는 너무 와닿는다. 너무도 애정 하는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선생님이 언급하는 시를 소재로 한 그림은 <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모으라>이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모으고 시간은 계속 달아나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은 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아서 여러 해석을 준다. 연애시도될 수 있고 삶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일부에서 유명해진 문구 '카르페디엠' 과도 연결 지어 준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라고 해석하고 또는 현재를 즐겨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말했다. 자기에게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서 현재를 놓치지 말라는 또 다른 말과 같은 의미로 적용하련다.
1800년대에 쓰인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소설 <프랑켄 슈타인>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다.
그 시대의 여성이라면 코르셋으로 허리를 잔뜩 조이고 파티의 꽃이 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기에 낭만주의 문학의 거성인 남성들과의 살롱 모임을 가지고 여행에서 무서운 이야기 짓기 게임을 하던 중 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 꿈 장면을 묘사한 소설의 장면이 있고 그 그림이 헨리 퓨 셀리의 <악몽>이라는 그림이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인조인간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고 원하지 않고 창조된 인조인간을 창조자라는 권력으로 파괴하려 한다. 소설 속 인조인간이 사랑과 우정을 갈망하지만 배척당하는 현실과 생명을 갖고 노는 부당한 처사는 인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을 고발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 윤리는 과연 어떠한가를 생각해보면 과연 몇 세기 전의 상상 속 과학자 빅터 프랑켄 슈타인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3. 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다산책방(2017)
너무나 잘 알려진 정약용.
그에 대해서 우리는 역사 시간을 통해 너무 중요하게 배웠고 외웠고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사람과는 한 차원 다른 조상님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 차원 다른 조상님인 건 분명하지만....^^
정약용은 정조 승하 후 노론이 장악한 조정과 천주박해로 인해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보통은 그 긴 시간 학문만을 연구하고 저술에 집중하여 우리가 역사시간에 외웠던 다수의 책들을 집필한 고난의 시간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그 시기에 여인을 만나고 늦둥이 서녀를 얻기도 하였다는 사실에서 소설이 만들어졌다.
너무 위대한 학자의 흠으로도 볼 수 있는 일이기에 (하지만 조선 후기 사대부에게는 흠이 아니다) 묻어 두는 이야기....
얼마 전 성석제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읽고 소설이라는 걸 알면서도 헷갈렸었는데 <정약용의 여인들>은 짧은 나의 생각으로는 소설이지만 소설적 장치를 많이 쓰지 않았다. 최대한 담백하게 그리고 위대한 학자 정약용을 좀 더 알 수 있게 쓴 친절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목에서 보듯이 정약용의 조강지처인 윤혜완과 강진에서 정약용의 살림을 살피고 딸을 낳은 홍 임모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그녀들의 각자의 인생과 감정선의 변화에 정약용이 가지는 한 사람의 남자로서의 이야기가 묻어간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데로 정약용이 아내의 빛바랜 치마폭에 그린 <매조도>라는 그림과 시는 시집가는 딸에게 준 선물이다. 몇 년 전 새가 한 마리만 있는 다른 <매조도> 그림이 전시되며 이 그림이 서녀인 강진의 딸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소개되어 흥미로웠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말하기 쉬워 18년의 세월이지 그 시기를 여인의 몸으로 집안을 건사하고 꾸려간 본가의 아내나 유배의 후반기를 여인으로서 정약용을 섬긴 소설 속 이름 진솔(기록에서는 홍 임모)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인생보다는 정약용의 여인으로서 살아간 것이다. 최문희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 보았는데 검색해 보니 연세가 생각보다 높아 놀랐다는 건 사설이고 아쉬운 점은 책의 표지가 너무 통속적 문장으로 호기심을 끌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피와 살을 가진 보통의 사내에 불과했소." 라니? 아쉽다.
어제가 반납일인데.....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