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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Jun 05. 2022

올여름도 잘 부탁해

3*22= 66

 조금 이른 듯한 더위에 지난주 넣어 두었던 선풍기를 꺼냈다.

집에 선풍기가 4대, 에어 서큘레이터가 1대, 아이들 책상에 미니 선풍기가 있다. 아들은 에어컨을 켜면 안 되냐고 했지만 아직은 에어컨이 일 할 때는 아니다고 했다. 선풍기를 연식이 얼마 되지 않은 순서대로 아이들 방에 넣고  거실에 둔 것은 올 해로 22년 차 열 일하는 선풍기다.

모양도 투박하고 색깔도 살짝 촌스럽다. 남편과 결혼 후 주말부부생활을 했는데 신혼집으로 마련한 작은 빌라는  통풍이 그다지 시원치 않아 답답했다. 결혼 다음 해 여름이 되었는데도 남편은 선풍기를 살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주말에만 올라와 하루 지내고 다시 내려가는 나는 신혼집의 살림살이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취생이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사는 식으로 집안에 어울리는 색이나 디자인과는 무관하게 물건들을 샀었다.

그때도 별로 안 더워 선풍기가 필요 없다는 남편이 어이없어서 집 앞 가게에서 조립해놓은걸 사서 들고 왔었다.

그 선풍기가 우리 집의 첫 선풍기다.


 몇 년 전부터는 머리를 고정으로 해 놓으면 '딱, 뜩, 딱, 떡' 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나서 강제로 도리도리 회전으로 해 놓는다.

요즘 선풍기들은 디자인도 예쁘고 리모컨도 있어서 사용도 편리한 제품들이 여름만 되면 구매욕구를 불러온다.

하지만 계속 회전 모드로 해 놓아야 한다는 걸 빼고는 멀쩡한 선풍기를 버리는 것은 또 아까워서 '이걸 올해만 쓰고 버려?' 하는 생각을 여름마다 반복한 것이 몇 년째이다.

선풍기 날개를 청소하고 커버를 끼우는 것도 집에 있는 다른 선풍기보다 조작이 간단하고 무엇보다도 바람이 가장 시원하다.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CM송으로 나오던 한일~ 한일~ 자동 펌프의 기술과 한 솥밥인 한일 선풍기라서..... 하하하!!!

예전에 어른들이 선풍기는 무조건 신일, 한일이지 했던 말씀이 진리였나 보다.

나는 물건을 오래오래 아껴 쓰는 사람이 아니다. 새 제품을 좋아하고 함부로 촌스러움을 말하기도 한다.

나이 드신 엄마가 옛날 물건을 끌어안고 계시면 버릇없이 '궁상'이란 단어를 꺼내기도 한다.



그러나 올여름 22년 된 선풍기를 꺼내 놓으면서는 이상하게 '올 해만 쓰고 버려?' 하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머릿속으로 이 아이가 실제 일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일 년에 평균 3개월을 일했을 것이고 22년이 되었으니 실제 일한 건 66개월.

'뭐야? 5년 반 밖에 안 됐잖아?

이런...'

아무튼  단순한 계산은 계산이고 우리 집의 역사와 함께 해 가는 정감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이 좋아졌다.

이것도 나이 먹는 현상이라면 어쩔 수 없고.^^

선풍기야! 올여름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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