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쓰는 여행일기 (비엔나)
비엔나에 처음 온 여행자가 먼저 찾는 곳은 아마도 궁전일 것이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궁전이라는 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왕가의 회화전시관이었으며 상궁과 하궁으로 나누어진, 무엇보다도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 왕가의 실제궁전인 호프부르크 왕궁이 있다.
오전과 오후에 벨베데레 궁전과 쇤부른궁전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트램 티켓을 사기 전에 엉겁결에 올라타서 무임승차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후에 1일권을 산 다음 계속 이용을 해서 몇 번은 무임승차가 되었는데 뻔뻔하게 타고 다닌 여행객이 되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버스나 트램에서 직접 태그를 하지 않고 지하철도 입구에서 자율적으로 시간 펀칭을 하게 되어 있어 나와 같은 비양심승객도 꽤나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운영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백이 부끄럽지만 반성한다. 만약 불시검문을 마주했다면 그야말로 나라망신 시키는 일이니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
벨베데레궁의 상궁에는 수많은 회화작품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비엔나 미술을 대표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다.
(키스)는 너무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 처음본것같지 않은 착각속에 진품을 본다는 것 외에 크게 감흥이 없었다.
작품 앞에 사람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현장학습을 온 현지어린이들이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게 더 경이로웠다.
세계의 여행자들이 이 작품 앞에서 감탄하고 인증샷을 찍으려 줄을 서는데
'우리는 여기 주인이야' 하듯이 바닥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누구보다 독창적인 그의 작품을 보고나서 클림트를 존경했다던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오디오 가이드덕을 최고로 많이 본 미술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압도 되는 작품은 바로(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그 옛날 중학교 참고서 완전정복의 뒤표지를 장식하며 '불가능은 없다'며 학구열을 자극하던 바로 그 그림을 보다니...
크기도 엄청 크고 영웅화를 위해 그린 그림답게 압도당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궁전의 정원을 둘러보고 하궁으로 갔지만 설렁설렁 보고 나왔다.
상궁에서 너무 힘을 뺀 것인지 모두들 암묵적으로
빨리 나가는 것에 동의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점심으로 슈니첼을 야무지게 먹어 주고 쇤부른 궁전으로 갔다.
쇤부른 궁은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되어 있어서 좋았다.
40개의 방을 보거나 20여 개의 방을 보는 티켓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20여 개의 방을 보는 것으로 선택해서 예매를 했었다.
68년 동안 재위에 있었던 프란츠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황후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많았다.
비텔스바흐??
뮌헨에서 알게 된 바로 바이에른 왕국가문이다.
그곳의 공주가 오스트리아황태자와 결혼했는데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가정적으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지만 미모와 암살로 인한 죽음이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그녀의 애칭인 SI SI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비엔나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의 중요한 아이템 역할도 하고 있는 듯하다.
호프부르크 왕궁에 SI SI 박물관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쇤부른 궁전은 노란색의 건물부터 매력적이었다.
옛 영광과 번성을 증명하듯 화려한 궁전의 내부가 무척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당시 최초로 발명된 황제가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까지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궁을 나와 꽃이 핀 봄날의 정원을 상상하며 글로리 에테가 있는 언덕에 올랐다. 글로리에테는 마리아테레지아 황제가 프로이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잠깐 쉬었다가 비엔나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보니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예술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유럽의 심장이었던 도시가 그 세월들을 모두 품고 아직도 멋지고 세련된 모습으로 남아서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 감동이었다.
석양을 받아 더 웅장하게 보이는 글로리에테를 뒤로 하고 시내로 나와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