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는 오월
그해의 그때도 오월이었을까?
대학 1학년이던 1985년, 교문 앞을 통과할 때 정체를 알 수없이 매운 것이 눈과 코를 자극할 때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학교 밖과 정문 안쪽 도로에 물을 뿌려 놓아서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던 신입생은 내 눈을 자극하던 것이 최루탄이 남긴 몹쓸 흔적이며 그것을 없애려 물을 뿌려 놓았다는 걸 조금 지나서야 알았다.
학교 안에 사복 경찰이 있고 대자보에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쓰여있었다.
어느 날은 집회현장의 뒤쪽에서 멀뚱히 서서 보고 있을 때 무슨 투쟁 위원장이라는 학생이 마이크를 들고 연설을 하는 중 갑자기 그 학생의 어머니가 어딘가에서 뛰쳐나와 울며불며 아들을 말리던 모습과 그 학생은 어머니를 피하려 뛰던 모습에 충격을 받던 무지한 1985년이었다.
데모하면 자식큰일 나는 줄 아는 순박한 어머니를 아마도 경찰이 데려왔을 것이다.
그런 시절이었다.
서클의 선배들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책을 이야기할 때
'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지?'
'엄마를 피해 도망치듯 뛰던 집회의 주동학생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결기에 차 있었나?'
어렴풋하고 미숙하게 5월 광주를 알게 되었다.
얼렁뚱땅 대학을 졸업하고 마음의 허영심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시민단체에서 처음여는 언론학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되던 엄마를 피해 도망치듯 뛰던 학생이 그 시민단체의 실무 자라는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1985년에서 10여 년이 흐른 뒤였는데 이제는 학생운동가에서 시민 운동가가 된 것이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는 해였을 것이다.
언론학교가 끝나고 깨어 있는 시민인척하며 그 시민 단체의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회원들과 함께 5월 민주화묘지의 신묘역이 조성되었을 때 방문하고 참배했던 것이
까마득하지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생활 터전을 옮기면서 그 단체와의 인연은 끊어졌지만 여전히 몇십 년을 시민운동가로 활동 중인 선배님의 소식은 건너 건너 듣는다.
오늘에야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가슴이 뜨겁고 아린다는 말로 다 표현이 될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기억들과는 별개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많은 젊은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픽션과 논픽션의 어디쯤으로 받아들일까 봐 오지랖 넓게도 걱정이 되었다.
아마도 오만한 꼰대적 사고일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광장에 나온 2030 세대들이 그리 많았는데....
20대의 내 아들들에게 읽기를 권하고 싶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유명세로 읽을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앞의 세상을 좁은 눈으로 보는 아들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커질까?
그러기를 바라본다.
작가가 이 책을 쓸 때의 진심이 한 줄 한 줄에 느껴졌다.
너무 미루지 않고 아들과 함께 아직 소년인 동호의 묘역에 국화꽃을 놓으러 다시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