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시작된 아들이 어젯밤에 집에 와서 늦잠을 자는 아침, 아들에게 줄 집밥을 준비하지 않고 정동진행 기차표를 샀다. 떠나는 길이 복잡했다면 선뜻 나서 지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집 앞 역에서 ktx를 탈 수 있다.
집에 온 아들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걸 보니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고 아침에 얼굴 보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집을 비워주고 하루 편히 쉬라는 속뜻도 있었다.
정동진에서 몇 시간 보내고 글을 쓰고 있는 50분 후에는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탈 예정이다.
강릉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표까지 예매하고 왔는데 오늘 귀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여차하면 하루를 보내고 들어가려고 간단히 챙겨서 나왔다.
몇 년 만에 온 정동진은 한가롭고 바람은 시원하고 바다도 여전히 예쁘기 그지없지만 왠지 좀 쇠락해 가는 느낌은내 기분 탓인가!
흔히 머리를 식히러 집을 떠나 길을 나선다고 하지만 진짜 맞는 말일까?
머릿속에는 풀어야 할 문제와 최선의 답을 얻기 위한 계산들이 계속 맴돈다.
바다를 보며 얼마 전 읽은 소설의 제목(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대입해서 엄마의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본다.
옛 어른들이 죽어서야 엄마 노릇이 끝난다고 했던가....
내가 엄마에게서 채우지 못해 허전함으로 남은 부분을 내 아이들에게는 채워주리라 생각하고 신경 써왔건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제각각인지라 아들에게 맞는 엄마 노릇이 아니었구나 싶어 허무하고 힘이 빠진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가 역 쪽으로 돌아올 때는 차가운 커피를 생각했는데 카페를 지나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산 것은 낮에도 혼술이라도 하고 싶은 무의식의 작용이었나 보다. 낯선 곳이었기에 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시원햐게 맥주를 마시며 무심코 위를 보니 편의점 지붕 아래 제비집이 있다. 그런데 전등을 지지 대삼아 집을 지은 모양새이다. 처음 든 생각은 신통하네~ 따뜻하겠다. 그다음 생각은 전등불 열기가 어린 새끼들에게 너무 뜨겁지 않을까?
자세히 보니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어미새가 먹이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 아이도 엄마 노릇하느라 애쓰는구나....
고민해도 정답은 없고 화가 나도 멈출 수 없는 엄마 노릇에 답답한 마음을 제비 보고 웃으며 내 아음대로 보내는 하루의 나머지 반을 채우러 강릉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