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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Jul 12. 2022

네 모녀의  제주여행 이야기  2

미숙함을  깨달았다

  제주 공항에서  만난  네 모녀는  역시나 텐션이 높지 않았다.

몇 달 만에 만나는 데다  장소까지  여행지이지만 우리는 변함없는 올곧은 여자들이니까...

렌터카를 인수하고  자신 있게 운전을 자처했지만  예상밖에  내 운전의 미숙함이 발견되었다.

단순 운전조작의 문제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내비게이션에 대한 이해력이 바닥인지라  동생들에게 원성과 동시에 웃음을 주었다.

운전경력은 25년 차이지만  최근에는 운전을 많이 하지 않았고 잘 모르는 곳에는 어지간하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터라  내비게이션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낯선 화면으로 낯선 길을 가자니 자꾸 길을 놓치게 되고 동생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첫 일정인 점심식사 식당 앞에서 정신 못 차리고 반대방향 차를 무시하고 진입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 날뻔한 순간과 함께 본격적인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김녕 해변가에  있는 식당에서  유명세 대비 맛점수를 후하게 줄 수 없는 식사를 하고 삼양해변 근처  카페에 앉아 한가롭게 더위를 피했다.

나는  여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가능한 한 많이 돌아다니는 타입이지만 이번 제주여행의 콘셉트는 '한가로움'으로 모두 동의했던지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동생들에게 일정으로 제안한 것은 우도에 가는 것 단 하나이다.

나 혼자서라도 해야지 하며 마음먹은 건  ' 아침 일찍 산책하기'이다.

4년 전에 네 모녀가 제주여행을 했을 때 나는 일정상 1박만 하고 먼저 올라온지라 넷이서  오롯이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건 거의 처음이다.

엄마가 4년 전과 비교해 더 살이 빠지셔서 기력이 없으시고 오래 걷기가  힘드시다.

당신 몸 돌보지 않고 살아오신 데다  면역성 기저 질환이 있으셔서 오랜 시간 약을 드시니  몸이 쇠약해지셨다.

그러나 성정만은 아직 변하지 않으셔서 자식에게 의지하신다거나  자식의 입바른 소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신다.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라고 했던가...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애처로움으로 마음이 아프고 막상 얼굴을 대하고  반나절이 지나면 나도 엄마도 엇나가기 시작한다. 큰딸이 그릇이 크고  많은걸 감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의 보편적 정서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좀 삐딱한 큰딸이다.

세 딸과 아들 4남매 중 가장 입바른 소리를 하고 감정의 표현이 거친 편이다.

아니 감정의 표현이 거친 것에 앞서 거친 감정만 표현한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걷다가 자꾸만 뒤처지는 엄마의 손을 한 번도 잡고 걷지 않았고 또 못했다.

동생이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자연스러운데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부자연스럽다.

아마 엄마도 그러실 것이다.

엄마와 나는 그런 모녀지간이다. 엄마는 큰딸인 나를 의지하지만  딸에게 당신의 의견이 꺾이는 것은 지는 것과 같으므로 싫고 나는 연세가 많아지심에도 변하지 않는 엄마의 성정이 이해가 안 되어 만나면 투닥인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 혹시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걷기를 바라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나는  미숙한 사람이다.

내비게이션을 못 봐서 운전에 실수를 하듯이 딸 노릇도 방향 설정이 잘 못되었다.

장녀 콤플렉스로 꼬여있는 심리 뒤로는 정서적 탯줄을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처음이라 엄마도 나도 서툴렀던 모녀관계의 미숙함을 제주바다를 보며 생각하고 돌아본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이제는 생각한 대로 행동이 안되고 지나고야 깨닫게 되는 나이'라고  자조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더 이상 미숙한 딸이면 안 된다는 것....

운전미숙을 깨닫고 미숙한 딸 노릇을 반성하며  내가 좋아하는 성산의 숙소로 일찍 들어가기로 한다


  숙소 침대에 앉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두 번의 방문에서는 날씨가 안 좋아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다음날  일출시간 직전 저절로 눈이 떠진 나와 동생들의 눈앞으로 바다 위 떠오른 태양이라니....

네 모녀가 같이 일출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무 좋아 우리의 텐션이 올랐다.

감사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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