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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Jun 21. 2023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 -1

일곱 해의     마지막/김연수/문학동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에서  이상과 낭만을 이야기한 시인으로 알았다가 꼬마이아이들이 배우는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동화시를 쓴 잘생긴 모던보이로만  내 상식의 한 점을 찍은 백석 시인의 이야기이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고  소설을 한 권 한 권 읽을수록  전집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만큼 작품의 소재나 글의 유려함이 남다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책을 선택할 때  아무 정보도 없이 김연수작가의 작품을 도장 깨기 한다는 생각으로 빌려왔다.

읽어보니  백석시인이 문학의 세계에서  사라지기 전인 1957년에서 1959년에 삼수의 협동조합농장으로 가기까지의 과정,  중간중간 시인의 회상, 1962년 마지막으로 잡지에 수령찬양 시가 소개되고 난 후 1963년의  어느 순간을 묘사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백석(본명 백기행, 소설에서는 기행으로 나온다)은  일제 강점기 평안도 정주출생으로 오산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전쟁 전에는 남북에서 두루 활동했으나  전쟁 후에 고향인 북쪽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월북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1980년대 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조치 전까지는   그와 작품에 대해 알려지거나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국 언어에 능통해서 훌륭한 통역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

(흰 바람벽이 있어)와 같이 섬세한 감정선으로  낭만과 사랑과 이상과 초현실의 시를 쓰던 시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회주의 국가의 작가동맹에 소속되어 그들이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애초에 작가가 자신의 생각이 담긴 쓰고 싶은 시가 아니라 마치 나팔수와 같이 사상전달용의 시를 배당받아 쓴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당의 메시지를 담되 문학성도 지키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전후에 빠르게 새로운 사회주의체제를 뿌리내리려는  주류에게는 너무도 나약하며 자본주의정신을 버리지 못한  쓸모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몇 년의 혼란과 불안을 끝내 떨치지 못한 백석은 1959년에

양강도 삼수 군의 협동조합으로 파견된 뒤 그곳에서 농부와 양치기로 살다가 1996년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의 주위는 일상인  그곳에서 그는 1962년을 끝으로 문학세계로 돌아오지 못하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조합의 일꾼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소설은  기행이 1963년의 어느 날 숲을 태우는 산불이 하늘이 내린  천불이라 말하는 이웃과 함께  자신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 방망이질하는 것을 느끼며 끝난다.


소설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가슴이 뛰는 걸 느낀 것은 시인 백석이었을까? 아니면 협동조합의 일꾼인 백기행이었을까?

그는  삼수의 협동조합을 벗어나 문학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가길 원했을까?

소설은 소설이기에  나는 가슴 뛰었던 건 그냥 인간 백기행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절망과 체념에 빠져있었을 한 시인이  저절로 생겨난 천불이 숲을 태우고 그 불탄 숲이 또 다른 삶의 밑거름(화전민들에게)이 되어주는 모습을 통해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찾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쩌면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농장의 농부로 묵묵히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백석과  다른 문인들이 젊은 날에 붓으로 세상의 권력과 맞설 수 있다고 믿었으며 자신들이 언어를 쓰는 사람이지 언어에 의해 쓰이는 운명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 참으로 먹먹하고 처연하게 느껴진다.

침묵의 몇 십 년을 지나

또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백석 시인을 통해

시대와 문학의 그림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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