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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Aug 02. 2023

동서-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 이름

하나뿐인 동서가 있다.

결혼이 늦은 편이었던  나보다 일찍 박씨네의 며느리가 되어

나는 겪지 않은 '며느리 길들이기'의 매운맛을 경험하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형제들끼리 사이도 원만하고 또 첫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의 같은 시기에 하다 보니 통하는 것도 많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주 왕래하고 여행도 다녔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고 각자 일도 시작하면서 뜸해져 이제는 명절과 시댁어른생신에야  얼굴을 보게 된다.

가끔 통화를 하는 것도 개인적인 안부 보다 시댁에 관한 의논일 때가 많고 그 끝에는 며느리들의 시댁 험담도 빠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은  손윗사람이라는 체면 때문에 동서말끝에 가벼운 맞장구를 치거나

" 그러게 말이야... 근데 어쩔 수 없지..."

정도로 끝내지만 결혼초기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했었다.



지난 주말에 시아버지 생신을 맞아 가족들이 모였다.

내려가기 전 서로 카톡으로 각자 해올 밑반찬과 준비할 것들을 의논했는데 나보다 먼저 내려간 동서는 이번에도 이것저것 해와서 냉장고를 꽉 채워놓았다.

통화할 때의 불평은 온데간데없고 막상 시댁에 오면 최고의 며느리가 되는 동서이다.

사실 동서는 요리를 무척 잘한다. 동서의 성씨인*이* 에 대장금의 장금을 붙여 '이장금'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결혼 전까지 요리다운 요리를  배운 적도 할 생각도 없어서 김치찌개나 계란국을 끓이는 정도였다.

손이 빠른 동서의 유려한 칼질소리에 살짝 열등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항상 명절이나 생신 음식준비에 앞장서는 건 동서였고 나는 보조였다.

그리고 초기에 서로 집에 왕래를 많이 할 때 동서로부터

기본 반찬하는 법을 배웠었다.

무생채, 제육볶음, 잡채, 등등....

친정엄마에게

"엄마, 나는 기본 요리를 엄마한테 배운 게 아니라 동서한테 배웠어"

했던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너무 고마운 일이고 그때 동서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거나 답답했을까 싶다.

손윗동서가 들어와 며느리 독박을 벗어나나 했는데 형님이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른다니...



동서의 생일이 아버님생신과  비슷한 시기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챙긴 적은 없었다.

이번에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일주일 전이  동서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결혼 20년이 훌쩍 넘은 올해 처음으로 동서에게 생일 축하 봉투를 주며 늦은 축하를 해주고  나의 요리선생이 되어준 것에 감사 인사도 했다.

각자 결혼을 통해 연결된 가족이지만 젊음과 늙음의 긴 시간을 함께 지켜보고 지내는 특별한 인연인 것만은 틀림없다.

외며느리인 친정의 올케는 혼자인 게 한편으로는 좋다고도 하는데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동서가 있는 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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