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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때는 옆을 보지 마라

하지마라시리즈 ep3

by 유니제이


“옆집 애는 벌써 영어책도 혼자 읽는다는데.”

“걔는 벌써 학원 세 개 다닌대.”

“우리 애는 대체 왜 아직도 그걸 못 하지?”


이쯤 되면, 비교가 아니라 거의 자기 비난 수준이다.

TV 틀면 정치 얘기 나오고,

카페 가면 영어 유치원 얘기 나온다.

학원차량을 기다리는 중 옆 엄마가 자기 아들은

수학 선행하는 중이라며 묘하게 자랑하고,

그 옆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린 아직 숫자 세는 중” 하고 웃는다.

어쩐지 웃는 그 얼굴이 안 괜찮다.


근데 말이야.

요즘은 아이들도 서로를 비교하더라.

“저는 구몬 선행 맞죠? 몇 학년 거예요?

친구는 어디 해요? 아직도 거기예요?”

그 말 들었을 때,

입꼬리는 웃었는지만, 입 안은 알싸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를 마주하며

왠지 모를 걱정이 몰아쳤고,

아무 말도 못 해주는 나를

괜스레 자책했던 날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자꾸 재고 있다.

매일매일 자라라고 강요하고 있다.

어디쯤 와 있는지,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학습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자그마치 12년에 걸친 마라톤이다.

달리는 속도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는가.

그게 관건인 거다.


비교는 사랑을 위장한 초조다.

“쟤는 저만큼 하는데” 속에는

“너도 좀 더 잘해봐”라는 잘못된 응원이 들어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건,

“넌 아직 부족하다”는 선고처럼 들린다.


비교는 상처를 주고,

기준은 잊게 만들고,

서로를 경쟁 상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아이만 잃는 게 아니라, 관계도 잃는다.



비교하지 않는 건 쉽지 않다.

우리도 비교 속에서 컸고,

비교 안 당하면 오히려 섭섭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근데 우리 애는

그 시절보다 더 따가운 세상 속에 있다.

같은 말을 해도, 더 아프게 와닿는 시대.


그러니 이 한 마디만 기억하자.


“넌 옆집 애가 아니라, 너는 너야.”


그리고 그 말이

정말 아이에게 닿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주는 날을 조금씩 늘려보자.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조금 느리고,

누구는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른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성장이다.


아들아, 딸아.

달릴 때는 옆을 보지 마라.

너는 너만의 속도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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