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위하는 말은 이렇게 다릅니다
며칠 전, 어떤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 사람은 부드러운 말투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 영상 속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작가님, 다음에는 한글 문서로 보내주세요.
그래야 제가 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어서요.”라면서
덧붙이길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
상대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듣기에 그럴싸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방식만이 정답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마케팅과 소통은 엄연히 다르다.
이 작가의 시선은 마캐팅적 시선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소통>은 단지 말을 예쁘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현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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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통의 방식과 도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 도구의 발전으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새로운 방식의 협업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기존 시스템과 현실을 무시한 채
새로운 방식을 무조건 우위에 두는 접근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부드러운 말투로 포장된
기존의 출판 업계의 현실과 관행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듯한 태도는
결국 상대의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무 현장에서는
아직도 한글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고 있고
그건 단순히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이 아니라,
교정·편집·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도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기존 시스템의 실용성을 무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진정한 소통과 협업은,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녹여내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더 새롭냐’보다,
‘무엇이 더 통하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협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이 글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진짜 소통은, 이해하려는 불편함에서 비롯되니까
진짜 성장은
서로의 현실을 이해한 뒤,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