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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Mar 14. 2020

소신과 고집 사이

이럴 땐 소신 저럴 땐 고집

 가끔은 내가 하는 선택들이 소신인가 고집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 달 만에 그만 둘 때도 그랬고, 자퇴 후 일본 유학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곧 서른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 내 꿈이 더 중요한 현재의 모습까지 소신인지 고집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다.




나의 기준, 타인의 기준

  처음 내가 대학을 그만두고 유학을 택했을 때 반응은 반반이었다. 멋있다는 응원과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는 걱정. 당시 일본은 대지진 후 방사능 유출에 민감한 상태였고 그런 이유에서 나의 일본행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난 당시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하게 있었고 방사능이 무서워서 그 일을 포기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의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난 본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내 성격이 싫었고 고쳐보려는 내 나름의 시도들은 상처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 내가 아버지에게 한 달 만에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말이 선언이지 매일이 눈물바다였다) 일본으로 떠난 것은 주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땐 용기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좋은 의미에서 고집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또다시 소신과 고집 사이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취직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온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였다. 그때 나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고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해서 경력을 쌓고 있거나 결혼자금을 모으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기에 나의 취직의 목적은 외국에서의 정착 자금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취직을 했었고, 현재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다.

  나의 선택은 내 기준에서는 소신이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고집일 것이다. 난 내 삶의 가치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두었고 그들의 삶의 가치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시선차이가 생기는 게 아닐까? 나는 4년간의 유학생활과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내 인생을 살아온 결과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한번 결심한 것에 대해서는 주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변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분명 걱정되는 마음에 하는 이야기들이고 나라고 해서 그런 걱정들을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름의 자료조사를 통한 실현 가능성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등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들이고, 이러한 과정을 설명해주면 대부분 나의 선택을 이해해 주거나 최소한 더 이상의 반대는 하지 않았다.


소신인가 고집인가

  때때로 나도 내 선택이 소신인지 고집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는 소신을 밀어붙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맞닥뜨리기 쉽다.

  가장 크게 왔을 때는 일본에 간지 2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일본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내 꿈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이었다. 어학교에서의 2년간 어학연수 후 한 사립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합격하였으나 학비가 생각보다 비쌌고, 안타깝게도 나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2년제 전문학교(한국에서의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포기하던 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알바가 끝난 후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며 펑펑 울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한 게 내 딴에는 너무 억울했고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있다. 당시 한동안 집에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었고 그때만큼은 내 선택이 쓸데없는 고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나의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다만 약간의 조건이 추가가 되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일은 하자'라고. 그 후 나는 그동안 참았던 덕질(...)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감당해내기 위해 방학이면 알바 시간을 늘려가며 돈을 벌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1년은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쓴 한 해가 되었다.

  여담으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는데 당시에는 콘서트 보러 외국에서 오는 팬들이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었다.(이것이 으른의 경제력인가) 콘서트 보러 국경을 넘었다가 결항이 되었을 때는 '반 오십에 아이돌 쫒아다니다 공항 노숙을 하다니'하고 약간의 현타가 올 때도 있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근래 들어 다시 현실에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다 보니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경제난에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다 보니 생각처럼 자금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기승전 돈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냥 포기할까' 보단 '이러다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는 요즘이다.

  내 주관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나도 내 결정과 선택들이 소신인지 고집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그 선택은 소신 있는 선택이 되겠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그 선택 소신이 아닌 고집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고집의 결과 또한 나의 피와 살이 되는 경험이고, 내 인생관을 완성해가는 과정 중 하나이기에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소신 있는 고집쟁이로 살기로 했다. 물론 고집이 과해지면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것들을 소신 있게 고집해볼까 한다. 비록 지금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할 것이고 언젠가는 성공담을 써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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