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일기 1탄. 도착 직후 한 일들
정신없는 첫날
드디어 유학길에 오르던 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신없었다. (첫날만 정신없었던 건 아님) 김포공항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탔고 생에 두 번째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땐 초등학교 때 이기도 했고 그때도 마찬가지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첫 소감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유학 첫날의 인상은 회색도시였다. 말 그대로 건물이나 분위기가 회색이었다. 회색 건물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의 긴장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걸지도. 아무튼 나는 내가 수속했던 유학원에서 단체 출국을 해서 다 같이 하네다 공항에서 신주쿠역까지 이동했고 내가 지내게 될 셰어 하우스에서 신주쿠 역으로 픽업을 나와줬어서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지내게 된 동네는 신오오쿠보였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인타운 한복판이다. 그렇기에 두 번째 인상은 명동
내가 유학을 떠난 해인 2014년 4월부터 소비세가 5%에서 8%로 올랐었는데 난 3월 말에 도착했어서 아직 5%였을 때였다. (현재는 10%) 곧 소비세가 오를 예정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고 있었고 나도 서둘러 기본적인 생활 용품을 구입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학을 왔다는 느낌보다 여행 온 느낌에 가까웠다. 운 좋게도 같은 셰어하우스에 같은 날 일본에 도착한 동갑인 친구가 있었고 일본어 왕초보인 나와 달리 일본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그 친구에게 초반에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처음 돈키호테에 갔을 때 한국의 마트를 생각하고 시식코너는 없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왠지 창피하다. 아무튼 한국의 마트와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었고 원래 마트 구경을 좋아했어서 한동안은 살게 없어도 구경 가곤 했다. 돈키호테와 함께 자주 갔던 곳 중 하나가 백엔샵이었는데 백엔샵에서 첫날 샀던 식기류를 유학생활 4년 내내 사용했다.(개이득) 그렇게 돈키호테와 백엔샵은 가족들이 놀러 올 때마다 항상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ㅎ
주소 등록, 건강보험, 핸드폰 개통 3종 세트+통장 개설
일본 유학을 시작할 때에 해야 할 3종 세트가 있는데 그건 바로 주소 등록, 건강보험, 핸드폰 개통이다. 거기다 플러스로 통장 개설도 해야 할 일중 하나이다. 일단 주소 등록과 건강보험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구약소 또는 시약소에(한국에서의 구청 또는 시청) 가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엄청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새 학기 시즌인 4월에 맞춰 출국을 하게 되면 사람이 더욱 몰리기에 더더욱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에 반해 일처리를 아날로그로 하는지라 오래 걸린다.
유학비자로 일본에 입국하게 되면 공항에서 재류카드를 발급받는데 구약소에 가서 주소 등록을 해야 한다. 요즘엔 일종의 주민등록증인 마이넘버 카드도 같이 발급받을 듯싶은데 내가 일본 생활을 한지 약 2년째 되었을 때 생긴 제도라 공항에서 발급해주는지 구약소에서 발급해 주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나는 그때 이미 일본 체류 중이었기에 우편으로 받았었다. 그리고 장기체류자의 경우 외국인이라도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기에 구약소에서 함께 처리하면 된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빌런이 있었으니 바로 통장 개설이었다. 외국인의 경우 일본 거주 6개월 이상이어야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데 한 군데 예외인 곳이 우체국 통장이다. 또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경우 급여 통장이 우체국 통장 외에 다른 은행일 경우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명함을 가져가면 일반 은행에서도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 은행 직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명함만 가져가도 개설해줄 수도 있고 전화로 채용여부를 확인하고 개설해주는 경우도 있다. 약간의 팁이 있다면 신주쿠나 이케부쿠로 같이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의 경우 상대적으로 융통성 있게 처리해주기도 한다.
아무튼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국으로 갔는었는데 심사에 걸려버린 것이다. 당시에 듣기로는 비슷한 이름의 사람이 과거에 어떤 나쁜 짓(...)을 했을 경우 그 사람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심사하는 것이라고 했다.(예전에 들은 거라 확실치는 않다) 위에서 말한 셰어하우스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둘 다 그 심사에 걸려버렸다. 나는 김 씨라 흔한 성이지만 이름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고 친구의 경우는 희귀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성도 아니었어서 둘 다 황당해하며 우체국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시간은 좀 걸렸지만 무사히 발급 완료.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 처음 도착해서 이런 것들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일본어를 거의 못하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나름 독학한다고 했지만 간단한 인사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도움을 받은 친구는 일본에서 처음 만난 거라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아마 그 친구와 만나지 못했어도 어떻게든 해나가긴 했겠지만 그 과정이 매우 험난 했겠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야말로 대책 없이 떠났었구나 싶다.
※제가 일본에서 거주했던 시기는 2014년~2018년 이므로 현재와 다른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