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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Dec 30. 2020

대장내시경&MRI 검사 1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12

  12월 15일 대변 검사 결과 칼프로텍틴 수치(대변을 통해 염증 수치를 알아 볼 수 있는 검사) 가 2978이였다. 담당 교수님께서 검사결과를 알려 주시면서 다음 주 일요일에 입원을 해서 대장 내시경 검사와 MRI 검사를 해 보자고 연락이 왔다. 지난 번 수치가 4145였으니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10월부터 거의 두 달을 엘리멘탈과 엔커버, 죽으로 관리 했지만 확 떨어지지 않았다.


  대장내시경. 내시경을 하는 동안은 어차피 수면 내시경이기 때문에 잠들어 있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그 전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4월에 처음 검사를 할 때도 쿨프렙이라고 하는 약을 물에 타서 500mL씩 총 4통을 전날부터 먹어야 했다. 장을 깨끗하게 비우는 약이기 때문에 먹고 나면 물처럼 변이 나온다.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장을 깨끗하게 비운다. 쿨프렙이라는 약은 밍밍한 맛으로 포카리스웨이트 맛과 비슷하다. 민지는 그 약을 너무나도 먹기 힘들어 했다. 대장내시경을 한 이후로는 포카리스웨이트를 보기만 해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알기에 ‘대.장.내.시.경.’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대변 검사 수치는 높고 설사는 여전히 심하지만 혈변이나 복통은 없고 피검사 결과도 정상이다. 그리고 그동안 끊어졌던 생리도 시작했다. 몸무게는 생각보다 늘지는 않지만 밥이나 경장영양제는 잘 먹고 있다. 장의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진단 방법이기에 4월 이후에 다시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4월에는 급작스러운 입원으로 부랴부랴 챙기느라 집에도 들락날락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미리 준비하고 입원하는 것이라 4월 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실컷 자고 넷플릭스에서 보던 ‘미스터선샤인’도 마저 보고 시간이 남으면 수학 인강까지 듣겠다며 호기롭게 수학책까지 챙겼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1인실로 입원을 했다. 일요일에 오후 4시쯤 입원을 하고 수액을 맞으며 ‘미스터선샤인’ 마지막 회를 눈물 흘리며 다 볼 때까지는 나쁘지 않은 입원 생활이었다.


  드디어 쿨프렙을 먹을 시간이 왔다. 대장내시경을 하는 전날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500mL씩 2통의 약을 먹어야 했다. 9시에 먹기 시작했지만 1시간이 지나도 500mL를 모두 먹지 못했다. 잠자기 직전까지 겨우 겨우 500mL 2 통을 먹고 12시 쯤 잠이 들었다. 그 다음 날은 새벽 5시와 6시에 한 통씩 먹어야 하는데 일단 어제 늦게 자서 새벽 5시에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겨우 6시에 일어나서 한 통을 타서 먹기 시작하는데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쿨프렙 타 놓은 통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시질 못했다. 오전 7시에 모두 마셨어야 하는 약을 오전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겨우 마시고 (그것도 다 마시지는 못하고 결국은 남겼다.) 이제 내시경 검사만 남았나 하고 안심하는 순간 또 다른 고난이 남아 있었다. 관장. 좀 더 깨끗한 장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관장까지 하자고 하셨다. 아기 낳을 때 해 봤기에 관장의 힘듦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해보는 지는 관장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당했다. 관장액을 넣고 10분은 참으라고 했지만 1분도 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다. 한 번 더 관장을 하자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에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려서 마음 약해지신 주치의 선생님이 관장은 이제 그만 하자고 하셨다. 눈물의 힘. 험난한 대장내시경 검사 준비가 끝났다.


  칼프로텍틴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대장내시경을 해도 그리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몸에서 보내는 청색신호들 - 생리의 시작, 컨디션의 회복 등 이 있었기에 약간은 기대를 해 보았다. ‘제발 수치들은 나빠도 내시경 결과는 좋기를’ 기도하며 지가 내시경 검사가 들어간 사이에 빌고 또 빌었다. 보통은 길어도 1시간 채 걸리지 않아서 마무리가 되었었는데 1시간이 조금 넘어서 검사실 안에서 “O지 보호자 들어오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바람만큼 좋지는 않았다. 십이지장 쪽은 예전엔 깨끗했었는데 살짝 염증이 생겨있고 대장과 소장에도 여전히 염증이 심하다고. 조직검사까지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이제 곧 끝날 거니까 밖에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수치들이 좋지 않았기에 조금은 내려놓고 있었지만 조금은 기대를 했기에 안타까웠다. 그동안 음식도 참 조심하고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서 잘 참아왔었는데. 예전에 없던 곳까지 염증이 생겼다니.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었던 것은 아주 심하게 장벽이 파여 있던 곳의 일부는 조금 치유 되어 있었던 곳도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담당 교수님도 내시경 결과 더 좋아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셨다. 오히려 이 정도 내시경 소견인데 복통이 없었던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혹시 지가 아픈데 참아온 것은 아닌지 물어보실 정도였다.


  참 알 수 없는 병이 크론병인 듯하다. 보통은 칼프로텍틴 수치가 높으면 염증도 심하고 복통이나 혈변, 설사가 동반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처럼 수치도 높고 염증도 심하지만 설사만 심하고 복통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 반대로 수치는 많이 떨어져서 거의 정상에 가까워 졌지만 복통이 심한 경우도 있으니 정말 알 수 없다. 결과가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많이 나빠진 것은 아니었기에 다음 날 소장 MRI 결과까지 본 후 차후에 치료에 대한 계획은 세우기로 하고 그렇게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월요일이 지나갔다. 소장 MRI 검사 전에도 쿨프렙 약을 먹어야 하긴 하지만 대장내시경 만큼 장을 깨끗이 비워야 하지는 않아서 2통만 먹으면 된다. 내일은 오늘 보다는 힘들지 않겠지 하며 ‘싱어게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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