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크론병 이야기 11
민지의 크론병을 가족 외에 먼저 알린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가까이 사는 이웃들이었다. 그 이유는 크론병 증상이 어제까지 멀쩡하다 어제 먹은 음식의 영향이거나 컨디션의 영향으로 갑자기 학교를 빠지거나 학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에서는 수업을 받는 도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담임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각 학과 선생님들께 혹시 민지가 수업 도중에 갑자기 나가더라도 모른 척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께서 작년에 그 반 학생 중에 크론병 환우가 있어서 크론병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민지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지금은 과학 학원을 빼고 다른 학원은 다 안 다니고 있지만 국어 학원 선생님께도 영어 원어민 선생님께도 민지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이야기 하고 갑자기 못 가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리고 양해를 부탁드렸었다.
두 번째로 알린 곳이 온라인으로 함께 아이들 공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교육 사이트의 커뮤니티였다. 거의 3년 내내 얼굴은 모르지만 아이들 고민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오던 팀이었다. 일단 익명이 보장되는 공간이다 보니 나와 민지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어렵지 않았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민지의 아픔을 함께 걱정해주고 응원도 해주는 온라인 친구들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알린 분이 나의 스승님 김OO 선생님이셨다. 온라인 글쓰기를 신청하면서 말씀드렸다.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민지가 크론병과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당사자인 민지 못지않게 지쳐가던 내게 큰 힐링이 되었다. 글을 쓰다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거기다가 브런치 작가로 작은 등단을 할 수 있게 해준 기회까지 주었으니. 민지의 크론병 이야기를 브런치에 게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눌러주고 힘내라는 댓글을 남겨주는 글들을 보면서 또 힘을 내게 된다.
고등학교 학생회 친구들과 독서OO 선생님들께는 12월 초에 이야기 했다. 딸의 크론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브런치에 남겼던 글들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민지가 좀 아프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브런치의 글들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브런치의 내 글들을 읽고 함께 응원해주었다. 이제야 나도 민지의 크론병을 받아들이고 크론병과 살아가기라는 글도 남길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졌지만 올 초에 민지가 크론병을 진단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크론병에 ‘크’자만 말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했으니.
크론병 환우 가족들 중에는 주변에 본인, 혹은 자녀가 크론병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안쓰러워하는 시선이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알게 모르게 소문이라는 것이 내가 알리고 싶지 않은 이들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놓고 자랑할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는 알리고 함께 응원을 받고 필요할 때면 도움을 받는다면 크론병도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민지를 위해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