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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Dec 11. 2020

오히려 다행이었다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10

  ‘딩동’ 연락도 없이 친정 엄마가 오셨다. 보통은 전화를 주시고 오시는데 아마 내가 전화를 못 받았던 모양이다. 들어오시자마자 식탁에 무엇인가를 꺼내시곤 민지를 부르신다. “민지야 할머니가 옥돔죽 만들어 봤는데

 한 숟가락만 먹어보자.” 옥돔은 민지한테도 부담이 없는 메뉴이긴 하지만 여름에 내내 질리게 먹은 흰살 생선이라 반응이 좋지 않았다. 변 검사를 위해 이틀 후에 변을 제출할 때까지는 무를 조금 넣은 흰죽만 먹겠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정성스레 만들어 오신 옥돔죽을 거부한다. 손녀한테 조금이라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할머니는 그래도 한 숟가락만 먹어 보라며 딱 한 숟가락 아니 반 숟가락을 먹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할머니는 서운하신 마음은 애써 숨기신 채 둘째에게 옥돔죽을 먹이셨다.


  민지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펑펑 울고 있었다. 그동안 잘 참아 왔었는데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의젓해서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펑펑 우는 민지를 보니 같이 눈물이 나긴 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의연한 척 하는 것 보다는 힘들 때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오히려 고마웠다. 엄마, 아빠가 걱정하실까봐 눈치 보며 애써 괜찮아 하는 모습 보다는 ‘힘들어요.’하는 이야기를 확 쏟아 내었으니. 


  옥돔죽 사건이 있던 그 날 밤. 밤이 되니 낮에 일들이 또 다시 생각이 났었는지 줌으로 수업하고 있던 내게 눈이 벌개져서 “엄마 약 어디 있어?” 하면서 들어왔다. 놀래서 서둘러 수업을 끝내고 약을 먹이고 민지 침대에 같이 누워서 서로 꼭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나도 민지도 정말 펑펑 울었다. 울고 싶을 때까지 실컷 울었다. 그러고 나서 둘이 끌어안고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민지도 나도 눈이 퉁퉁 부운 채로 일어났다. 부운 눈을 서로 바라보면서 키득 키득 웃었다.

숟가락 4개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30분 정도 지난 후 눈에 차가워진 숟가락을 대고 퉁퉁 부운 눈을 가라앉혔다. 아침 내내 눈이 부어있었다가 점심 쯤 되니 둘 다 부운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실컷 울고 난 다음 날 피곤하긴 했지만 마음은 둘 다 후련해졌다. 민지는 먹기 싫은 죽을 밥을 먹기 위해 오늘도 먹었다. 그리고 실내 자전거 돌리기도 했다. 생일이기도 했던 펑펑 울고 난 다음 날. 먹지도 못하는 케이크를 손수 골라서 같이 사왔다.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르며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내년에는 떡 케이크라도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혼자 몰래 눈물을 훔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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