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크론병 이야기 2
민지가 크론병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보는 학교 시험이다. 시험이 대수냐 시험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공부하다 아플까, 시험보다 혹시 배라도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크론병을 극복하고 공부도, 하고 싶은 일도 이루고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꼭꼭 숨겨 두고 민지에게는 너무 무리하지 마라. 지금은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 힘들면 쉬면서 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민지는 병을 알게 되기 전 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몸이 아파서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고마울 뿐이다.
시험 기간 준비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 아직은 크론병 활동기. 크론병은 활동기와 관해기로
구분이 되는데 안정된 상태인 관해기가 아닌 활동기 때는 소장, 대장에 염증이 때문에 먹는 것에 따라 설사나
복통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밀가루, 첨가물, 기름지고 매운 음식, 설탕뿐만 아니라 섬유질이 많은 고구마, 시금치, 양배추도 조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들 때 재료가 제한적이다. 닭가슴살, 계란, 익힌 채소, 감자, 두부 정도는 괜찮지만 몸 상태에 따라서 괜찮던 음식을 먹고도 설사나 복통이 올 수도 있다.
민지는 시험 2주 전부터 그동안 먹었었던 음식들도 잠시 멈추고 ‘엘리멘탈’이라고 하는 경장영양제만 먹기
시작했다. 엘리멘탈은 장에서 흡수가 잘 되도록 영양소가 골고루 가수분해 되어 있는 가루이다. 물 500ml와
가루 한 포를 섞어서 먹으면 400kcal를 섭취할 수 있다. 엘리멘탈을 2포나 3포를 끼니마다 나눠서 먹으면 부족하지만 하루에 필요한 열량을 섭취할 수 있다. 청소년이나 어린 크론병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경장영양제인데 문제는 이 한 포가 14000원이라 가격이 사악하다. 다행히 만 19세까지는 보건소에서 지원이 나와서 어린
크론병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엘리멘탈만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장에 가장 편한 음식이기에 시험 기간 음식 문제를 해결하게 해 주었다.
그다음은 컨디션 조절. 음식을 잘 섭취하지 못하고 장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보니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질 때가 가끔 있다. 머리가 갑자기 띵 하고 어지럽다거나 목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크론병 초기에 진단받을 때 염증이 목구멍까지 심하게 퍼졌었기에 목이 아플 수 있다. 더욱 긴장하게 된다. 이번 시험 기간 중에도 하루
목이 칼칼하다고 해서 약을 먹어야 하나 병원을 가봐야 하나 하다가 목에 뿌리는 프로폴리스를 뿌리고 일찍
잠을 자도록 했다. 다행히 프로폴리스가 제 역할을 해 주어서 다음 날은 목이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민지는
아프기 전부터 영어와 수학은 집에서 공부를 했기에 학원을 가느라 피곤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혼공(혼자 공부하기)’을 미리 연습해 두길 잘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밤에 잠들기 전에 유튜브를 보면서 요가를 했다. 스트레칭을 위주로 하는 요가가 호흡과 명상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하는 요가 마지막 부분에 ‘송장 자세’라는 것이 있는데 전신에 힘을 빼고 호흡에만 집중하는 자세이다. 들숨
날숨에 집중하며 호흡을 하니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좋은 것 같았다. 민지 덕분에 같이 요가를 하면서 나도
평상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평소 시험공부는 시험 보기 4주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었다. 이번에는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질 것을 대비해서 일주일을 추가해서 5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미리 공부를
시작하니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평소보다는 시험 스트레스를 덜 느끼는 듯했다.
이제 3일 동안 부담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즐기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놓고 민지는 이렇게
말한다. “90점만 넘으면 A니까 90점은 넘겠지.” 민지나 엄마나 말로는 90점만 넘으면 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시험 잘 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표현은 반대로 하며 편안한 마음 유지하도록 마인드 컨트롤해 본다. 첫날
시험을 보고 돌아와서 세 과목 300점!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딸과 하이파이브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