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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Sep 08. 2020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3


  민지가 크론병 진단을 받고 먹은 약은 총 세 가지이다. 제일 먼저 먹은 약은 스테로이드제이다. 스테로이드제는 민지의 소장과 대장에 발생한 염증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약이다. 스테로이드제는 만병통치약인 동시에 악의 축,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양 극단의 별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단기간 필요한 용량만큼 잘 사용하면 만병통치약이지만 장기간 복용하거나 급작스럽게 약을 중단하게 되면 부작용이 심한 약이기 때문이다. 

민지는 처음 진단할 때 8알 복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알씩 줄여나가면서 두 달 동안 서서히 줄여나갔다. 만병통치약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민지도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할 때가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몸무게도 쭉쭉 늘어났고 식욕도 생겨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를 완전히 끊고 나서는 며칠 동안 힘들어했다. 식욕도 떨어지고 몸무게도 점점 줄어들고 어지럽고 메스꺼움 때문에 거의 잠만 잤다. 다행히 며칠 지나고 몸이 적응하면서 증상이 완화되어 정상 생활이 가능했다. 


  병을 진단받고 지금도 계속 복용 중인 약은 총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가 펜타사라고 하는 항염증제이다. 

펜타사는 처음에는 1알을 복용하다가 지금은 2알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 약의 문제는 너무 크다는 것이다. 여자 어른 두 번째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여서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큰 크기 때문에 반으로 쪼개서 먹기도 하고 물에 녹여서 먹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물약을 더 싫어하는 민지는 처음에는 넘기기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 약을 잘 넘기고 있다. 민지가 이 약을 만든 사람들은 직접 먹어보지 않고 만든 것 같다며 약을 만들 때는 먹기 쉬운 지도 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투덜댔다. 약을 넘기기는 힘들지만 이 약 때문에 몸이 힘들지는 않았었다. 대부분 크론병 환자들도 펜타사를 먹고 부작용이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지금도 복용 중인 약 중에 아자치오프린이라고 하는 면역억제제가 있다. 민지가 먹고 있는 약 중에서는 가장 크기가 작다. 지름이 0.7cm 정도밖에 안 되니 타원형의 가장 긴 부분이 2.5cm 정도 되는 펜타사와 비교하면 펜타사가 어른이라면 아자치오프린은 갓난아기 정도인 셈이다. 하지만 크기가 작다고 무시는  금물이다. 8월 초 진료 때 민지 몸무게에는 면역억제제를 2알까지 증량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다. 이제 방학이니 면역억제제를 한 알 먹던 것을 한 알 반으로 증량해 보자고 의사 선생님이 약을 처방해 주셨다. 처방해 주시면서 증량하면 좀 어지럽거나 몸이 힘들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스테로이드제도 끊을 때 며칠 좀 힘들고 괜찮아졌으니 

이번에도 그 정도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 작은 반 알 늘렸다고 뭐 그리 힘들까 했다. 면역억제제를 반 알 늘려서 먹고 일주일 정도는 오히려 몸 상태가 더 좋았다. 항상 변이 설사 아니면 무른 변이였는데 넉 달 만에 굳은 변을 누었다고 좋아했다. 오래간만에 민지가 먹을 수 있는 샤부샤부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외식도 할 정도로 식욕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하루 종일 힘이 없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동안 줄었던 복통도 생기고 낮에는 잠만 잤다. 잠을 자도 힘들어했고 일어나도 다리에 힘이 풀려 샤워할 힘도 없을 정도였다. 속이 좋지 않아 발 마사지, 종아리 마사지, 팔 마사지 배가 아플 때 누르면 좋다는 곳은 다 돌아가며 마사지를 해 줬다. 중학교 들어와서도 쉬지 않았던 해금 수업도 중단, 원어민 선생님과의 영어 수업도 중단했다. 3~4일 정도 고생하고 결국은 병원에 전화해서 약을 늘려서 힘들어한다고 상담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약을 다시 한 알로 줄여서 먹어보자고 했다. 다시 약을 줄여서 먹고 2~3일이 지나자 힘들어하던 증상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크기는 가장 작아서 반 알 늘린다고 뭐 그리 힘들까 했던 약이 민지를 제일 힘들게 했다. 면역억제제. 요즘은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면역조절제’ 라 부르기도 한다. 크론병은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자신의 신체조직에 과도한 염증을 발생하도록 하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면역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나쁜 것들에서 자신의 몸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여 과도한 염증을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면역조절제는 과도한 면역체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적정 용량을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힘든 여정이었다. 힘들 때도 항상 밝은 모습의 민지였는데 면역억제제 반 알이 주는 고통은 극심했다. 그 작은 크기의 약이 준 고통,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그 여름에 작은 알약 하나가 나를 힘들게 했었지 하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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