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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Sep 09. 2020

먹거리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4

  크론병은 소화기 특히 소장, 대장에 염증이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크론병 환우들은 먹거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던 것들조차 하나하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크론병 환우나  부모님들이 가입해서 운영이 되는 밴드인 ‘크론 밥상’이라는 곳을 알게 되어 가입을 했다. 그곳은 환우들이 먹고 탈이 없었던 음식들을 공유하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괜찮았던 음식이 본인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으므로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조금씩 섭취해 본 후 괜찮으면 또 먹는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먹었던 음식들을 적으며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를 관찰하는 모습을 보고 민지는 자신의 몸으로 관찰 실험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에 염증이 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에게는 많이 먹으라고 권장하는 음식들도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식이섬유이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은 장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서 권장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 환자들에게는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다. 고구마, 고사리, 생야채, 현미 등의 잡곡 우리가 흔히 건강한 식재료로 알려져 있는 음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건강한 사람들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는 튀김, 매운 음식, 인스턴트 음식, 카페인은 당연히 금지 음식들이다. 주치의 선생님이 일반식으로 넘어가도 된다고 하실 때도 튀김, 치킨, 떡볶이는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7월 말 기말고사 전까지는 민지가 스스로 조심하느라 물처럼 마시는 경장영양제로 음식을 대신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민지가 먹을 음식들을 생각해 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아프기 시작했던 3월부터 죽, 두부, 생선, 닭 가슴살로 만든 음식들 위주로 먹었던지라 이 세 가지는 일단 거부한다. 특히 생선은 다른 식구들이 먹을 때 저쪽으로 치워달라고 할 정도로 냄새 맡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그나마 먹어서 괜찮았던 식재료가 흰쌀, 감자, 복숭아, 소고기 연한 부위, 도토리 묵, 양파, 청경채, 당근, 밤 이런 재료들이다. 기름을 써서 조리를 해도 되긴 하지만 또 너무 기름지면 배가 불편해지므로 가능한 기름도 적게 써야 한다. 기름을 쓰지 않고 요리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매운 것도 안 좋기 때문에 고추장, 고춧가루도 사용하지 못한다. 제한적인 조건에서 요리할 때는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예전에 먹던 것 중에 민지가 좋아하면서 장에 무리가 가지 않은 음식부터 생각해봤다. 따끈하게 멸치육수를 내고 당근, 양파, 청경채를 넣어 국물을 만들었다. 도토리묵을 길쭉하게 썰어 흰쌀밥 위에 얹은 후 국물을 끼얹어 만든 묵밥. 면역억제제 때문에 어떤 음식도 잘 먹지 못하던 상황에서 성공했던 첫 음식이었다. 도토리묵은 염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영양적으로도 성공했다. 오래간만에 또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이 생겼으니 크론 밥상 밴드에도 의기양양하게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감자는 민지를 임신했을 때 나의 아침 식사였다. 엄마 뱃속에서 많이 먹은 음식이어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자를 삶아주니 너무 맛있다고 잘 먹어줬다. 민지가 뱃속에 있을 때 매일 아침 감자 껍질을 벗겨 소금을 살짝 뿌리고 물을 조금 넣어 압력솥에서 찌던 것처럼 매일 아침 감자 찌는 것으로 아침 준비를 시작한다. 잘 먹는 감자를 조금 응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게 잘 쪄진 감자를 으깨고 멥쌀가루 한 숟가락을 섞어서 반죽을 하니 빵 반죽과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 반죽을 작게 뭉쳐서 평평하게 눌러준 다음 찜통에 물을 담아 종이 호일을 깔고 쪘다. 찌기만 하고 먹어도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맛에 예민해진 민지에게는 합격 점수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아주 살짝만 두르고 쪄진 감자 반죽을 살짝 구워봤다. 굽는 내내 과연 이것이 성공할지 두근두근 긴장이 됐다. 살짝 구워낸 후 따뜻할 때 먹어 보았다. 일단 성공. 민지에게 먹이기 전에 승현이에게 먹여 봤다. 왕이 음식을 먹기 전에 기미 상궁이 먹는 것처럼. 승현이도 맛있다고 했다. 한 점 더 먹어도 되냐는 승현이에게 우선 누나 먼저 먹고 남으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민지에게 먹여 보았다. 한 입 살짝 먹어보고는 “음, 괜찮은데” 이 한마디로 아침 내내 고민을 하며 음식을 만들었던 엄마에게 큰 보상이 되었다.

 

 아프고 난 후 처음으로 먹어 본 과일이 복숭아였다. 복숭아 역시 엄마 뱃속에서 많이 먹었던 음식 중 하나이다. 겨울에 태어난 민지가 아직 뱃속에 있었던 여름에 복숭아에 대한 일화가 있다. 당시 회사가 명동 남대문 시장 근처였는데 퇴근길에 복숭아를 싸게 파는 곳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복숭아 10개쯤을 샀다. 배도 무거운데 무거운 복숭아를 들고 집에 오느라 그 다음날 배가 뭉쳐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정도로 복숭아를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지금 민지가 그렇다.  처음에 조심스레 복숭아를 먹고 맛있어서 더 먹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이제 8월도 중순이 지나간다. 이제 곧 복숭아 철이 지나가 버리는데 복숭아가 아직 맛이 있을 때 많이 사서 복숭아 통조림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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