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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Sep 08. 2020

딸에게 배운다.

- 딸의 크론병 이야기 1



  2020년 4월 7일 민지는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자주 배가 아프기 했지만 3월부터 복통이 심해져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진료를 가서 복통이 너무 오래가고 있으니 대장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다. 다음 날 바로 검사를 했고 민지는 ‘크론병’ 진단을 받고 입원을 했다.


  크론병. 생소한 병이었다. 검사 전날 진료받을 때 크론병이 의심이 된다고 해서 검색해 봤더니 소장, 대장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윤종신과 미스터 트롯의 영기도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기사들도 있었고. 증상을 읽어 보는데 민지의 증상들과 비슷했다. 복통, 설사, 전신 쇠약감, 체중감소.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것이 희귀성 난치질환이라는 것. 검색해 보면서도 제발 이건 아닐 거야. 단지 장염이 심해서 오래가는 것일 거야. 아니면

과민성 대장증후군 정도일 거야.


  “아무래도 크론병인 것 같습니다.” 대장내시경 결과를 보여 주시면서 보통의 대장은 표면이 매끈해야 하는데 민지의 대장은 표면이 자갈길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이라고 하셨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크론병이지만 혹시 다른 병일 수도 있으니 입원해서 다른 검사들도 진행을 하자고 하셨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마스크가 가려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크론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되물어 보았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내가 수업하느라 바쁘다고 냉동식품을 너무 많이 해 먹였나? 작년 여름에 민지가 잘 먹는다고 각종 음료수

사다 먹였는데 그것이 안 좋았나? 내가 너무 지저분하게 집을 관리해서 그런 걸까? 하지만 아무리 질문을 한다고 해도 답은 없는 질문들.


  3일 정도는 누구랑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고 해서 친정 엄마나 동생 하고도 전화통화도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환자 본인도 정작 울지 않고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는데 엄마가 되어서 나약하게 굴면 안 되지 않은가. 밥도 더 씩씩하게 먹고 더 씩씩하게 굴었다. 엄마를 강하게 만들어 준 건 딸이었다. 아픈 주사 맞고 먹기 힘든

약과 영양제를 마시면서 눈물 한번 보이지 않았던 딸. 그런 딸을 보면서 나도 힘을 내야만 했다.


  크론병은 ‘엘리멘탈’이라는 경장영양제를 마시면서 장을 쉬게 하면서 약물로 치료를 한다. 밥을 못 먹고

느끼한 오렌지향이 나는 엘리멘탈을 매 끼니 먹는다는 것은 고욕이긴 하지만 민지는 그걸 해 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염증이 가라앉고 나면 천천히 음식을 섭취하면서 염증이 없어진 상태인 관해기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 다시 염증이 재발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하고 매일 펜타사와 면역억제제라는 약을 먹어야

한다.


  민지의 병을 알게 된 후 좋은 변화들도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해주고 안 했던 안아주면서 깨우기를 하고, 매일매일 건강을 체크한다.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더 많이 웃고 냄새 맡고 싶다는

음식들 만들어 주고 식구들이 먹어주면 대리만족을 느낀다. 저녁마다 민지와 함께 가벼운 요가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딸과 엄마가 집에서 요가를 함께하는 중3은 많지 않으리.


  며칠 전 민지 담임 선생님께서 상담 차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께서도 민지의 병을 알고 계셨기에 학교에

등교를 하면 힘들어하지 않을지 좀 걱정을 하셨는데 다행히도 잘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민지의 성적을 이야기해주시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작년 성적이 전교 1등이었다고. 아마 그때도 약간의 병의 전조 증상인

가벼운 복통과 무기력증 같은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잘해줬다는 사실이 미안하면서 고마웠다.

앞으로 좋아질 날도 있고 나빠질 날들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딸의 크론병도 딸에게는 인생의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며 딸의 인생을 응원한다.



*딸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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