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엄마 Sep 09. 2020

관해기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5

  “엄마 나 관해기야?” 민지의 건강을 위해 매일 밤 자기 전에 요가를 하는데 요가를 하는 중간에 물어본다. 관해기. 네이버 어학 사전에 ‘관해’로 검색하면 ‘완화의 전 용어’라고만 간단히 검색이 될 정도로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크론병 환우들에게는 귀에 익숙한 단어이다. 민지도 자신이 크론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검색창에서 검색하고 엄마와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알게 된 단어이다. 


  크론병은 크게 활동기와 관해기로 나눈다. 활동기는 크론병 증상이 심해지는 기간이고 관해기는 증상이 가라앉은 상태를 뜻한다. 의사들은 활동기와 관해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의학적 계산법을 통해 크론병 질병 활성도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환자의 증상 또는 전신 상태를 객관화하여 경증, 중등증, 중증 및 관해기로 분류한다. 내원하기 전 일주일간의 평균 대변 횟수, 복통의 정도, 전반적인 몸의 상태, 합병증, 지사제를 사용할 정도로 설사가 심한지, 배를 진찰할 때 덩어리가 만져지는 복부 종괴의 존재 여부, 빈혈 정도, 체중 등 미리 정해진 가중치를 곱하여 점수를 계산하여 활성도가 150~ 220인 경우 활성도가 가벼운 경증, 220~ 450인 경우 중간인 중등증, 450 이상인 경우 매우 심한 중증으로 분류하고 있다.

 (질병 관리 본부 희귀 질환 헬프라인 참고, https://helpline.nih.go.kr/)

  증상을 통해 관해기를 분류하기도 하지만 환우들이나 의사 선생님 사이에서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했을 때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에 염증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완전 관해’라고 한다. 크론병 환자의 활동기의 대장 내시경 결과 사진을 보면 매끈하게 뻗어 있어야 하는 대장이나 소장의 장벽에 마치 조약돌이 깔려 있는 것과 같은 점막 모양이 관찰된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고름이 생기듯이 하얗게 되어 있는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농양이라 한다. 농양으로 인해 복통이 심해지고 고열이 나기도 한다. 염증으로 인해 장과 복벽 사이에 작은 구멍인 누공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누공과 농양은 장의 벽에 큰 구멍을 만들어 복막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피검사나 대변 검사를 통해 염증 수치를 관찰해야 한다.


  올해 3월에 심한 장염인 줄 알고 동네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다 4월에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크론병 진단을 받은 민지. 4월부터 6월 초까지 8주가량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 엘리멘탈이라고 하는 경장영양제를 밥 대신 먹는 치료를 했다. 장에 염증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양은 공급하면서 동시에 장을 쉬게 해야 한다. 피부에 염증이 있을 때 염증이 있는 부분을 계속 손으로 만지거나 화장을 한다면 피부가 낫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 섭취로 장에 있는 염증을 치료해야 한다. 피부는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조직이니 인체 내부에 있는 장벽보다는 회복이 빠를 것이고 상대적으로 장벽에 있는 염증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피부에 있는 염증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7월 기말고사를 위해서 힘들었지만 엘리멘탈을 6월, 7월 두 달 동안 더 먹었다. 마치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었던 것처럼 민지는 쑥과 마늘 대신 엘리멘탈을 먹었다. 7월 말 기말고사를 무사히 치르고 8월 초부터 천천히 일반식을 시작했다. 감자, 흰쌀밥, 계란, 기름이 없는 살코기로 시작해서 쌀국수, 모닝빵 햄버거, 오므라이스까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엘리멘탈만 먹던 환우들이 일반식으로 넘어갈 때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염증 수치들이 높아지는 경우들도 많은데 다행히도 민지는 염증 수치도 잘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하셨다. 병원 진료를 받고 온 날 밤 이제 관해기가 온 것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 상태가 많이 괜찮아졌으니 이런 말도 하는구나.라고 안심이 되면서도 4월부터 민지가 참 고생을 오랫동안 해서 많이 지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음……. 완전히 관해기는 아니지만 이제 거의 관해기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이제 자주 골고루 많이 먹고 살만 찌면 관해기 올 거야.” 그 말을 듣고는 민지가 한 마디 더 한다. “관해기 오면 좀 안 좋은 음식도 가끔은 먹어도 되겠지?” 매콤한 라면도 먹고 싶고 달콤한 팬케이크도 먹고 싶고 버터 향 가득 나는 버터쿠키도 먹고 싶다. 먹고 싶은 마음을 말로만 먹고 싶다고 하고 막상 너무 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어볼까? 하면 안 먹겠다고 손사래 치는 민지가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자기 관리를 잘해주는 모습이 어른스러워 기특하면서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아 아쉽고 안쓰럽다. 


  어제는 물김치를 담그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아침에 배추, 파프리카, 쪽파 등 재료를 사 왔다. 배추와 무를 절이고 쪽파를 다듬고 있는데 새우젓을 사지 않은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새우젓을 사러 다시 나갔다 오니 과외 학생이 왔다. 잠시 물김치 담그기를 멈추었다가 수업이 끝나고 배, 양파, 새우젓, 마늘, 생강, 물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 물김치 국물을 만들었다. 손질하고 절여 놓은 야채를 잘 버무리고 통에 넣은 후 물김치 국물을 통에 부었다. 물김치 모양이 났다. 그런데 뒤늦게 냄비에 찹쌀풀을 쒀 놓고 넣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찹쌀풀을 통에 넣어 잘 섞었다. 처음 해보는 음식이다 보니 하루 온종일 걸려서 만들었다. 냉면이 먹고 싶다는 민지에게 냉면 대신 물김치 국수를 해주기 위해서 만든 물김치. 제발 잘 익어서 맛있는 물김치 국수를 만들 수 있길. 관해기로 가는 길, 나의 요리 실력도 쑥쑥 향상되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