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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Feb 22. 2021

예비 고등학생의 하루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19

  “엄마, 이제 9일 남았어!” 예비 고등학생인 민지는 이렇게 매일 매일 고등학교 입학 D-day를 외치고 있다. 이게 그냥 들으면 아주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의 표현인 것 같은데 말 할 때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자세히 보면 불안한 마음 보다는 기대에 찬 마음이 조금은 더 큰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잠자기 직전에 ‘어떡해. 벌써 고등학생이야“ 라며 호들갑이  심해진다. 남편과 나의 잠자는 시간이 너무 다르다 보니 (나는 밤 10시 취침, 남편은 새벽 2시 취침) 어쩔 수 없이 민지 방에서 잠을 잔다.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사실 정말 좋다. 남편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둘째도 누나 방에서 며칠 동안 자기도 했었는데 그 때가 나는 가장 좋았다. 덩치는 큰 두 아가들을 옆에 끼고 잔다는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키워내느라 힘들어서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느끼는 그런 기분? 하지만 둘째에게 밤 10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누나의 스케줄은 무리였다. 이제 예비 중학생인 둘째에게 수면 시간은 최소 8~ 9시간은 보장되어야 하기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민지의 “어떡해.”가 시작된다. ‘학교 가기 싫어.’ 그랬다가 갑자기 ‘그런데 학교는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동아리가 궁금하고 반배정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빨리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고 조금 더 집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한 달만 더 있다가 학교 가고 싶기도 하다고.


  2월 초 혈액 검사 결과 염증 수치는 거의 정상이었다. CRP라는 염증 수치가 살짝 높고 백혈구 수치도 조금 높긴 했는데 아마도 C.difficile 균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지난해 말 항생제 부작용으로 한 번 고생한 후로 항생제라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났지만 이 균 때문에 설사도 지속 될 수 있으니 다른 종류의 항생제로 바꿔 보자고 했다. 항생제는 2주 먹어야 하니 등교가 시작되는 3월 이 전에 다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바로 먹기 시작했다. 이번 항생제는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먹고 있다. 아직은 대변 검사 염증수치인 칼프로텍틴 수치는 2000으로 높은 편이고, 무른 변에 변 횟수도 하루에 3~4번 정도이긴 하지만 다른 증상은 없고 컨디션도 좋은 편이다. 


  새벽 5시, 민지의 스마트 패드에서 알람이 울린다. “민지 언니 일어나, 민지 언니 일어나, 와~ 와~” 4살 사촌 동생에게 부탁해서 녹음하고 엄마가 편집해 준 맞춤 알람 소리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때문에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알람 앱에 간단한 수학 연산 문제를 풀어야 알람 소리를 끌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3문제 정도 연산 문제를 풀어서 알람을 끈다. 새벽 시간에는 주로 수학 공부를 한다. 중학교 때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선행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가장 걱정되는 과목이 수학이다. 엄마가 수학 선생님이긴 하지만 엄마는 다른 학생들 가르치느라 따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진도를 빨리 나가야 하는 민지는 인터넷 강의를 선택했다. 수학 선생님인 엄마는 딸이 부르면 바로 달려가서 모르는 걸 알려주는 역할만 했다. 중3 기말 고사가 끝난 지난 해 11월부터 민지는 수학 공부에 집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수(상), 수(하) 과목 쉬운 문제집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난이도가 높은 문제집을 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는 수1 과목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과정 공부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수학 공부를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공부하면 아주 많이 하는 편이였는데 요즘은 6시간에서 7시간도 너끈히 하고 있다.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이 수학인지라 수학 이외의 과목들은 중간 중간에 짬을 내서 공부하고 있다. 국어는 중학교 때 책을 많이 읽어 둔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는지 비문학 독해는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다. 영어도 혼자 단어를 외우고 모의고사 기출 문제를 풀면서 공부하고 있다. 틈틈이 책도 읽고 있다. 피터 싱어 “동물 해방”, 최재천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강석 “바이러스 쇼크”,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바버라 내터슨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제인구달 “인간의 그늘에서” 등 관심 분야인 동물, 환경 등에 대한 꽤 어려운 책들도 재미있다며 읽는 모습을 보면 딸이지만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저 나이 때 무엇을 했었나? 하며 반성하는 마음까지 든다. 


  남편은 민지한테 공부 그만 좀 하라고 이야기한다. 학창시절 할머니한테 매일 공부 좀 하라는 말을 들어서 자기도 자식들한테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를 해 보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못하겠다고. 지난 해 고생한 딸을 볼 때, 속마음은 ‘건강하기만 해다오’일 것이다. 아플 때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럴 때는 한 숨 쉬어 가고 건강히 공부할 수 있는 컨디션일 때는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며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고등학생 시절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일주일 후면 정말 고등학생이 되는 예비 고등학생 민지 파이팅!


(사진은 밀가루 없이 카사바 가루, 아몬드 가루로 만든 호두 머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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