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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Mar 05. 2021

너도 힘들지?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20

  ‘예비’ 고등학생이던 민지가 이제 ‘진짜’ 고등학생이 되었다. 2월 마지막 주에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한 달만 더 ‘예비’ 고등학생 했으면 좋겠다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3월 2일 화요일. 민지는 고등학생, 승현이는 중학생, 나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부모가 되었다. 


  2월에 민지는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면역억제제 (MTX), 또 병원 약과는 별도로 영양제를 먹으며 지냈다. 하루에도 알약만 20개는 넘게 먹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 쯤에 엔커버를 하나 마시고, 6시 반 쯤엔 엘리멘탈을 한 포 타서 500ml을 마신다. 원래 엘리멘탈을 한 포 타면 한 번에 다 먹지 못해서 반포씩 나눠서 타 먹었었는데 학교 가면 중간에 나눠 마시기 힘드니 2월 중순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바로 마시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 바로 전날은 도시락 먹는 연습도 해 본다며 아침에 도시락을 싸 놓고 학교 점심시간 쯤 맞춰서 도시락 먹기 예행연습도 했다. 어떤 학교는 코로나 때문에 외부 음식은 절대로 반입 금지하는 곳도 있어서 미리 학교에 전화해서 물어본 결과 다행히도 민지가 갈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와도 괜찮다고 하셨다. 

 

  드디어 3월 2일. 그 날이 오기는 왔다. 작년 12월에도 힘들어해서 학교에 자주 못가는 날이 많았었는데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체력이 약한 상태다. 아침에 민지 도시락을 준비하고 승현이 아침 준비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니 혼이 쏙 빠져나간 듯했다. 2월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힌 어깨 통증에 몸이 으슬으슬 춥기도 하고. 너무 긴장해서 몸이 좀 피곤한 것이겠지 하며 미루고 미루던 아이들 옷장 정리를 오전 내내 했다. 여기 저기 쌓여있던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하고 조카네 보낼 옷도 따로 챙기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도 다 학교 가고 해서 신랑이랑 간만에 집근처 태국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


  밥을 먹고 들어와서 6시까지는 과외 수업도 멀쩡히 했는데 7시가 다 되어 가니 열도 살짝 나는 것 같고 몸도 여기 저기 몸살기운으로 아팠다. 부랴부랴 남은 수업은 취소하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열을 재보니 37.6~ 37.8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요즘 같은 시절에 몸이 아프면 마음이 더 불안해 진다. 거기다가 미열까지 나니 집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물수건을 머리에 얹고 누웠다. 누워있는 엄마 옆에서 민지와 승현이는 첫날 학교에서 있던 일들이며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알종알 이야기 했다. 몸도 아프고 마음은 더더욱 불안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열이 내려가기를 바라며 물도 많이 마시고 비타민도 먹고 밤 9시에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다행히 열은 정상으로 내려갔다. 또 아침 일찍부터 두 아이의 교복을 다리고 아침을 차리고 민지 도시락을 준비했다. 둘 다 학교에 가고 나니 또 몸살 기운이 몰려왔다. 한숨 푹 자면 괜찮겠지 하며 오전 내내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한 몸살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혹시 코로나 검사 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핸드폰에서 코로나 증상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의사인 동생에게 물어도 보고, 수업도 하루 더 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을 돌렸다. 저녁을 먹고 좀 누워서 뒹굴뒹굴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두 아이, 특히 민지를 학교에 보내면서 씩씩한 민지와 달리 엄마인 내가 더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임시반장도 맡아오고 과목 별 부장을 뽑는 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표도 잘하고 친구들도 하나 둘 사귀며 학교생활 잘 하고 있는데 미리 걱정하고 걱정하다 보니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개학하기 며칠 전, 친정 엄마가 전화하셔서 어깨가 아파서 한의원에 다닌다고 얘기했더니 “너도 힘들지. 애들 학교 가면 너를 위해 마사지도 좀 받고 운동도 하고 해라.” 하시는 말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화여서 다행이었다. 크론병뿐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밤새 잠도 못자는 것이 엄마의 마음. 크론병과 같은 희귀질환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다.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고 웃는 아이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되고 눈물이 난다. 아이가 배가 아프거나 살짝 열이 나기만 해도, 입안에 작은 염증만 생겨도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에 또 눈물이 난다. 마음으로는 눈물 흘리는 날이 많지만 아이를 위해서 아이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애써 더 밝게 이야기하고 더 좋은 이야기들만 하려 한다. 아이가 없을 때 이렇게 글을 쓰며 한바탕 실컷 울고 나니 걱정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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