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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Mar 19. 2021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그리고 눈물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21

  이제 민지가 크론병을 진단 받은 지 1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크론에 ‘크’자만 말을 꺼내려 해도 눈물이 흘렀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은 괜찮아졌다. 울지 않고도 민지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민지가 고등학생이 된 지 3주째 되는 수요일에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비대면으로 학부모 총회를 하는 곳들도 꽤 많은데 민지네 학교는 대면으로 학부모 총회를 했다. 아이의 교실에 아이 자리에서 TV를 보면서 학교 폭력 예방 교육, 청탁 금지법 교육, 작년 3학년 입시 실적에 대한 설명 등을 듣고 반 별로 학부모 대표, 부대표를 뽑았다. 학부모 대표는 반장 어머니께서 하시고 나는 부대표를 맡게 되었다. 대표와 부대표는 1층으로 모이라고 해서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민지 담임 선생님께서 내려오셨다. 반대표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시고 나를 잠깐 부르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는 짐작이 되었다. 질병에 대해 작성할 때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작성해서 냈고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알고 계시니 병에 대해서 물어 보시는 것이겠지.


  선생님께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민지가 크론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요.” 그 말씀을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 하니 눈물을 머금고 작년부터 크론병을 앓게 되었고 작년에는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을 때도 있어서 학교에 못 가는 날도 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상태이고 맵고 차갑고 인스턴트 음식들은 못 먹어서 작년부터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고. 미리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민지가 회장선거도 나가고 싶고 각종 활동들도 다 해보고 싶다고 의욕적인 편이라 혹시 아프니까 하지 말라고 선을 그으실까봐 미리 연락드리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도 병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하시지만 학급 일에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지가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셨다고 하셨다. 이제 곧 중간고사도 있는데 체력 안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장래희망이 수의사라고 했으니 관련된 활동이 아닌 것들은 민지에게 이런 활동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시기로 하고 잠깐 동안의 상담을 마쳤다.


  주변엔 많은 엄마들과 선생님들이 지나가고 있어서 눈물 흘리며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화가 끝난 후에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으니 눈물만 잘 닦고 자연스러운 척하며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울었다는 티를 조금이라도 내지 않으려 더 웃으면서 눈가가 촉촉해진 것을 안 보이려 했다. 이런 저런 공지를 마친 후에 드디어 총회가 끝나고 수업 시간도 촉박하고 해서 뛰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먼저 물어봐 주셔서 감사하고, 갑자기 눈물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직은 아픈 아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아 미리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아프지만 자기 하고 싶은 일들 모두 맘껏 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네요. 감사합니다.” 내가 보낸 문자에 선생님께서도 답장을 주셨다.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다들 많이 우신답니다. 저야말로 처음 뵙는데 힘든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해요. 민지가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사실 학기 초에 먼저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은 작년보다는 많이 좋아지고는 있어서 학교생활이 피곤은 하지만 아예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니 괜히 미리 말씀 드리면 하고 싶어 하는 많은 활동들에서 열외를 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이기도 하고 긴장하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선생님 앞에서 부끄럽게 한바탕 울고 와서 그랬는지 집에 오니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명치 있는 곳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랴부랴 남은 수업은 취소하고 안마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쉬면서 민지랑 총회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했는데 선생님께서 엄마를 보시더니 ‘민지 엄마시죠?’ 그래서 깜짝 놀랐어. 엄마가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분위기가 비슷해서요. 라고 하셨어. 엄마랑 민지랑 좀 닮았나봐.”


  작년 담임 선생님도 민지를 많이 응원해주시고 힘을 주셨다. 올해도 좋은 선생님과 즐겁게 고등학교 1년 잘 지낼 수 있기를. 건강 관리도 잘 하고, 하고 싶어 하는 공부도 동아리도 마음껏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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