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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Sep 11. 2015

즐거운 편지

유난히 긴 연휴를 보낸 것처럼 느껴지는

나른한 하루를 보냈다.

한 낮의 뜨거운 해가 지고 나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또 다른 절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얼마전 부터 문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던

고양이 울음소리는 오늘도 멈출줄 모르고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저 녀석도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창 가까이에서 가는 빗방울 소리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에 함께 섞여 부는 선선한 작은 바람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은 모양이다.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
축축함을 머금은 바람이 살갗에 와닿는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한참을 있어 본다.


친구와 안부를 묻는 문자를 주고 받다가
무심코
금방 지워지고 마는 휴대전화 문자보다
의 말을 담은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ᆢ를 읽었던 그때를 회상하며...


그때 갓 스물을 넘어
꿈꿀수 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모두 나의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빛나던 그런 시간을 살고 있었다.

즐거운 편지를 읽고 첫 구절이 너무도 좋아
메모지에 써서 넣고 다니곤 했었다.

그러다 한참 지난 어느 날에 펼쳐
접혀진 종이 위에서 색이 번져 얼룩지고

희미해진 흔적을 따라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으려

애써 읽어 보기도 했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와 닿던 아름다운 그 말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리라.

노을지는 저녁이 되면
커다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마지막 빛을
등지고 앉아 낮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며
그 빛이 사라질때 까지
읽고 또 썼던 그 말들이 그리웠다.

하고 싶었던 말들 또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상이 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해가 지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단 한 순간도 바람이 불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단 하루도 사소한 일상이 결코 사소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제 다시 잊었던 그 말들을
흩어졌던 그 말들을
다시 읽는다.
다시 쓴다.

그때는 몰랐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ᆢ는 그 말

이제

아주 조금은

그 말의 의미를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쳐고 지쳐서 다 버리고 싶을 때가 오면
그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ᆢ
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가슴 밑바닥에 무겁게 가라 앉아 있던
마음속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이
희미한 안개가 되어 차오르고 있었다.

이내 곧
눈 앞 모든 것들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 또한
슬픔이라고 해야 했다.


몰랐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되버렸을 때처럼

기약없는 길고긴 기다림이
언젠가는 끝나야 함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체념하며 맞이하게 되는 그런 슬픔이 였다.


그런 슬픔이 찾아올 때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 하는 것 뿐 일것이다.


오늘 한 통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언제쯤 보내야 할지는 르겠다.


빗소리는 여전히 들려 오고 있다.
그렇게 밤새도록 천천히 내릴 것이다.


오늘 밤 꿈에
책상 앞에 앉아  즐거운 편지를 읽고 있

너를 만나 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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