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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Dec 23. 2017

프라하를 걸었다.

순례자도 아니였고

여행자도 아니였다.


신념이 부족해 순례자의 길은 성스러워

감히 밟아볼 엄두조차 내지를 못했고

 한포기 물 한모금에 감동하고 감사할 여유도

서로 다른 공기를 알아챌 여유도 없었기에

제대로된 여행자도 될 수 없었다.


제 살던 곳 떠나

처음 만난 도시들의 매력을

길게 바라볼 여유도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달려가

숨이 가쁘게 지나쳐 온

낯선 도시위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이방인이라는 자유로움은

덜어내고도 아직 내게 남겨져 있는 커다란 무게감을 견딜수 있게 했다.


지나는 곳 어디쯤에

조금씩 두고 올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다시 찾고 싶은 도시 프라하에

까를교 아래로 조용히 흐르는

다뉴브강 물위로 조금 덜어내서

떠내려 보냈다.


광장 한복판에 몰려든 사람들 위로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기묘하게 아름다운 천문시계탑에서

평범한듯 작게 울리던 소리는

그많던 사람들의 소음을 통째로 삼켰다.


발디딜틈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숨죽여 시계 소리를 듣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덜어내져 있었다.


스테인글라스가 너무 황홀해서

환영이라도 본듯 착각했던 대성당에서

도시의 붉은 지붕위

더 붉은 노을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터 앉아 있었던 망루 한켠 어디쯤에도   

조금 덜어 내놓고 왔다.


잊지 않은 날 다시 찾아가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시며

덜어낸 무게 만큼 가벼워졌는지를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되어 있을때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설레이고 있는지를

물어봐야지.


다시 찾은 나를 반기는 바람을 보듬고

광장바닥을 두드리며 들려오던 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는지

서쪽하늘에 걸쳐진 목소리의

그림자를 찾아서 물어 봐야지.


그래봐야지 그래봐야지 했다.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가 걷던                           순례자의 길에 대한 숨겨져 있던 환상과 동경은

여행중 발길이 닿았던

프라하의 어느 크리스탈 가게 안에서

파란색 크리스탈을 발견했을 때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모든 크리스탈 가게들의 파란 크리스탈에 산티아고의 흔적이

남겨진것만 같아서 만지고 또 만져 보았다.


그 도시를 떠나올 때 아쉬운 마음은

다음번에는

순례자이기를

여행자이기를 바랬다.


어느새 점점 바래는 것들이 늘어나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했다.

백가지중 한가지만 있으면 될것을

그 한가지가 없어서

나머지 아흔아홉가지가 넘쳐서

좋기도, 싫기도, 나쁘기도 하다보니

많은 것을 갖고도 그러는 건가 보다.했다.


채우지 못한 한쪽의 갈증은

부족하나마 또다른 한쪽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삶안에서

사람안에서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얀 눈에

눈이 부시고, 눈이 시려서

눈물이 났었다.


한동안은

그렇게 아름다운 눈이 내린

겨울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랬듯이

떠나있을 때

남겨진 것을 더 간절히 그리워하며

돌아올 것이다.


나무 숲에서 나던

한겨울 마른 나무냄새와

비릿하고 차갑던 흙냄새와

그늘이 드리워진 오래된 양탄자에서 나던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문득 그립다.


지금보다 조금 더 그리워지는 날

다시 길을 나서 보리라.한다.


서쪽하늘에서

천문시계탑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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