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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Jan 06. 2019

너의 목소리

겨울의 바람이 부는 추운 날

얼음장 같은 아스팔트 위를

느리게 걷고 싶었다.


도시의 잿빛 냉기가 온몸에 감겨왔다.

사거리에 멈춰 서서

금방이라도 눈이 내려올 것만 같은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쯤이면 오려나...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허망하고 쓸쓸한 것이었다.


허망함에 더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을

느리게 걷고 있었다.


마음의 무게가 더해져

더디게 가던 지난 시간을 등 뒤에 남겨놓고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뎌 봐도

시간은 여전히 더디게 가고 있었다.


남겨진 시간을 주머니 안에 깊숙이 찔러 넣고

매일의 일처럼

커다란 유리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섞여

실내에 둥둥 떠다니는 소독약 냄새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려지게 했다.


벽면 모니터에 선명한 이름을

처음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가슴에 들러붙은 불덩이와

사람이 들여보낸 불덩이를

태워야 할 시간이었다.


태워도 태워도 다 타지 않을 사람의 그것.

그럴 때마다

고르지 않은 호흡을 힘겹게 뱉어내며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기계음 사이로

꿈꾸듯 아득하게 들려오던

의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그렇게 혼자 그 시간을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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