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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junwon Mar 21. 2023

07. Outro.

휴직이 내게 남긴 것들에 관한 이야기

휴직의 끝


휴직을 시작할 때 뚜렷한 목적이 없었다.

20년 직장생활에 대한 셀프 안식 개념이기도 하고 지치게 하는 회사가 죽도록 지겨워서 한 휴직이었으니,

휴직동안 무엇을 하자라기보다는 어디 한번 쉬어보자. 의 생각이 컸다.


목적이 없으니 '해야 할 것'의 목록은 없었지만 몇몇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은 세웠었다.

늦잠 자지 말 것, 그러기 위해서 늦게 자지 말 것, 휴대폰에 빠져 있지 말 것 등등


그렇게 휴직을 시작했고 4개월간의 휴식은 마치 4일처럼 짧게 지나갔으나,

그 휴직이, 그 휴식이 내게 남긴 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나의 현실'로 돌아가려 한다.

 


 요가라는 다른 세상의 경험


요가가 목적인 휴직이 아니라 휴식이 목적인 휴직이었고, 요가는 내 휴식의 한가지 방법이었다.

주 3~5회 적당한 요가로는 성에 차질 않았고 쉬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에 등록한 TTC였는데, 운동 이상의 경험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한다.


요가를 경험해보지 않고 내가 내 몸을 관찰하는 일이 있을까. 여타의 다른 운동들은 연습을 할수록 내가 나의 능력치를 쌓기 위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요가는 내 몸의 능력치와 함께 나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아사나 과정 중일수도 있고 명상일 수도 있고 사바사나일수도 있고.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십수년 이상의 수련 후에나 간신히 올 수 있는 경험일텐데, 제삼자의 눈과 마음이 아니어도 나 스스로 나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경험은 뭐랄까. 세상의 온갖 나쁘고 더러운 것들로부터 나를 씻어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요가에서 확장된 다른 세상의 경험


힌디, 불교, 파탄잘리 경전, 비건, 아유르베다.. 인도의 문화란 참으로 오래되었고 오랜 시간을 이어온 만큼 깊이가 깊다. 모든 것이 다른 것들인 줄 알았는데 다 연결점들이 있다. 지식이 짧아 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들은 다 이유가 있고 다 연결되어 있다. (요가가 다이어트 운동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깝다)

아유르베다가 한의학, 중의학으로 뿌리를 내린 깊은 의학임에도 오일 이름 정도로만 알았던 내가 인도문화원에서 진행한 아유르베다 강의도 들어보고, 파탄잘리 경전도 읽어보면서 한 지구 안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세상, 전혀 다른 가치관, 전혀 다른 문화, 전혀 다른 종교가 하나의 행성 안에 섞여 있으니 무시, 불인정, 불화합, 불화, 전쟁이 없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와 일, 일하는 기술, 사내 정치, 처세 등 흔히 말하는 직장인의 사회생활만 20년을 보낸 사람이 이렇게 다른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니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 동료들을 바라볼 때에 미묘한 애잔함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이런 마음이 아마도 스님이 중생들을, 목사님이 신도들을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의할 순 없지만 나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독서를 통한 다른 세상의 경험

  

휴직을 하니 당연히 주어진 시간은 많고 주어진 과업은 없다. 평소 바쁘단 핑계로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을 하나둘씩 집어 들게 되었다.


삼매. 바람이분다, 가라. 보통의 언어들, 당신이 옳다. 꽃들에게 희망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호텔 이야기. 커피는 어렵지 않아. 데미안.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스토너. 그릿 등 책들을 읽었다. 책을 읽었다는 것의 의미도 있겠지만 읽은 책들의 범위가 넓다.


자기개발서 또는 업무와 관련된 전공서적을 주로 봤었는데 휴직기간에 만난 책들은 나를 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남산 힐튼 호텔로, 바리스타로, 백년전의 미국 대학으로, 재일교포들의 세상 등등 온갖 곳으로 안내해 주었고 이렇게 넓은 세상에 대해 무지한 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세상은 넓고 책에 담겨 있는 상상들은 더 넓은데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데, 자존심이 어쩌니 자존감이 저쩌니 또 존재감을 펼치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았구나. 하며 한심하고 불쌍했다.


이 또한 나를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주었고 나의 휴직에 갖게 된 시각들에 대해 감사하다.



복직. 출근 첫날



그래 휴직은 그렇게 끝이 났고, 기존에 몰랐던 다른 시각들과 함께 마이나스 통장의 빚을 얻었다.

현실로 돌아가서 돈을 버는 업을 해야하고, 또다시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볍고 만원 지하철이 스트레스 없이 버틸만하다.

이 기분은 무얼까..


그래. 사람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매일이 사납고 버거운 곳이었던 회사란 존재가, 알고 보니 나에게 매우 큰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며 존재였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깨닫는다.


출근해서 보니 자리를 비웠던 지난 연말의 조직개편과 여러 환경의 변수로 너무 많은 변화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조급하지 않다.

오히려 그래 올해는 나에게 어떤 일이 다가올까. 기대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휴식을 취했고 대책 없이 간 휴직에 너무 많은 것을 얻어왔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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