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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뺏어가는 사람들

내 얘기는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느낀 피로감

by 그냥 하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온 사이 내 차가 긁혀 있었다. 주차할 때 분명 아무 문제없었는데, 누군가 내 차를 건드려 놓고 간 것이다. 꽤나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는데,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한 친구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말하기 위해 숨 쉬는 사람, 내 이야기의 작은 틈새를 노리는 '대화의 맹수'이기 때문이다.


"하, 그 정도면 애교야. 나는 작년에 고속도로에서 사고 났었잖아. 뒤에서 갑자기 박고 견인차까지 불렀다고."

순간 내 입에서 나오려던 말들이 도로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마치 실패한 솜사탕처럼 녹아내려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를 뺏어가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대화의 부자'라고 부른다. 겨우 입을 열어 경험을 나누려는 순간, 더 화려하고, 더 극적이고, 더 센 이야기로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 우리가 경험이라는 화폐를 두고 경쟁한다면, 그들은 언제나 더 많은 액수를 손에 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부를 과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요즘 허리가 좀 아프네."

"허리? 내가 작년에 디스크로 두 달 누워 있었잖아. 그때는 진짜..."


기쁨도, 슬픔도, 고민도 그들의 더 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초라해진다. 어느새 대화는 그들의 독무대가 되어버리고, 내 말은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래서 이제 나는 특정 사람들 앞에서는 내 이야기를 서랍 속에 고이 접어둔다. 마치 비싼 명절 옷처럼, 꺼내 입을 날이 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


"주말에 뭐 했어?"

"별거 없었어."


이렇게 답하는 나의 모습이 낯설지만 사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방어기제다. 가끔은 침묵이 평화로울 때가 있다. 특히 내 말 한마디가 그들의 열 마디 자랑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한 상황에서는. 어쩌면 우리는 모두 듣고 싶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듣기'라는 행위가,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모른 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가끔은 그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들이 감기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폐렴으로, 그들이 폐렴이라면 나는 결핵으로 한 수 위의 경험을 들이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화의 탁구대에서 공을 독차지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게 된다고.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부려도, 마주 칠 상대가 없다면 그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뺏어갈까? 이런 행동에는 나름의 심리가 있다고 한다.


첫째,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나도 그런 경험 있어. 근데 내 경험이 더 대단해!"라는 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강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둘째, 공감을 표현하는 잘못된 방식 때문이다. 상대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나누면서 공감을 표하려 하지만, 결국 대화를 독점하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대화 불안 때문이다. 침묵이 불편해서든, 상대방의 이야기에 적절히 반응하는 방법을 몰라서든, 대화를 빨리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해 버린다.




그러나 여기서 불편한 진실은, 나 역시 종종 이야기를 뺏어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친구가 새 직장에 대한 불안을 털어놓을 때, "아, 첨엔 그렇지. 내가 처음 이직했을 때도…” 라며 대화의 방향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친구의 표정에서 실망감을 읽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방금 그 '이야기 뺏어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렇듯 공감하려는 마음이 의도치 않게 상대의 경험을 덮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라는 말이, "너의 경험은 특별하지 않아"라는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대화는 테니스와 같다. 주고받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만 계속 치고, 다른 사람은 주워다 넘겨주는 식이라면, 그건 더 이상 테니스가 아니다. 진정한 대화는 듣는 시간과 말하는 시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결국, 내 경험과 감정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신호다. 때로는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이야기에 내 '더 나은' 버전으로 응답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를 뺏어가는 행동은 이 권력 싸움의 한 형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관심을 독점하려 한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심리학자 데보라 테넌은 이를 "대화 자아도취"라고 부른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만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대화 방식.




우리 모두에게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인정받고 싶은 경험, 나누고 싶은 기쁨과 슬픔, 위로받고 싶은 상처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야기 독점자'들에 의해 사라져 갔을까.


나는 이제 내 이야기를 되찾기로 한다.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내려놓고.


"잠시만, 내 이야기를 마저 들어줄래?"


이 한마디는 사실 그저 단어의 나열이 아니다. 내 존재에 대한 선언이자 내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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