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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너, 그런데 왜 불편할까?

미러링, 복제가 아닌 침식의 기술

by 그냥 하윤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건 자연스럽다. 누구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가까운 사람들과 비슷한 말투를 쓰기도 하고, 취향이 겹치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별명을 쓰는 사람, 내가 선호하는 색감과 유사한 톤을 좋아하는 사람, 심지어 내 말투를 따라 하는 사람까지. 그럴 수도 있지, 싶다.


그러나 가끔, 단순한 취향의 겹침이라 넘기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내가 한참 빠져 있던 작가를 뒤늦게 ‘최애’라고 말하는 사람. 내가 오래전부터 써오던 문장 스타일이 상대의 SNS에서도 자꾸 눈에 띄는 경우. 심지어, 지난봄에 썼던 내 경험담과 지나치게 유사한 글을 발견했을 때. 단어 몇 개만 바꿨을 뿐, 문장 구조와 결론까지 놀랍도록 흡사하다면?


어느 날, 타인의 블로그에서 익숙한 문장을 발견한다. 창밖에 비친 내 얼굴을 본 것 같은 기묘한 기분.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처럼 느껴질 때. 혹은 모임에서 내가 몇 달 전에 했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자기 경험인 양 늘어놓는 사람이 있을 때. 한 번쯤은 ‘우연이겠지’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그제야 의심이 싹튼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


사실 이런 유형을 10대, 20대 때도 알음알음 마주쳤고, 30이 넘어서도 여전히 근근이 나타났다. 공통적으로는 처음엔 단순한 취향의 겹침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해외 인디 음악을 듣는 취향, 감독의 필모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영화를 고르는 방식, 내 취향대로 꾸민 커트러리와 식기 조합,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세까지. 어느 순간, 나만의 세계라 믿었던 것들이 타인의 일부가 되어 변형된 채 돌아오기 시작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시감. 그러나 그 익숙함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 익숙함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내가 추천한 책을 다시 나에게 추천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고유한 특성인 것처럼 말하는 모습. 내 얼굴의 작은 점을 따라 찍고, 내 말투, 내 습관, 내 취향이 조용히 복제되는 순간들.


가장 불쾌한 순간은, 내가 누군가의 참고자료로 전락했음을 깨달았을 때였다.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이 그의 빈 공간을 메우는 퍼즐 조각이 될 때. 내 언어는 그의 문장이 되고, 내 경험은 그의 서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더 강렬한 버전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사진을 올리면, 몇 분 뒤 더 자극적인 버전이 등장한다. 마치 초안을 던지면, 누군가는 더 눈길을 끄는 최종본을 내놓는 것처럼.


그것은 마치 내가 남긴 발자국 위로 누군가가 조용히 발을 포갠 뒤, 어느새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지나간 길인데, 이제는 그가 먼저 걸어온 길처럼 보이는.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영향을 받는다. 가까운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하고, 새로운 것을 접하며 취향이 바뀌기도 한다. 어떤 향기가 오랜 시간 옷에 배듯,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흔적을 남기고 남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원래의 향을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참고하면서도 결코 그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 것.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미러링'이라고도 부르지만, 실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다. 단순히 거울에 비친 이미지처럼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흔적을 지우듯 가져가는 '따라하기(mimicking)'에 가깝다.


이런 행동은 영화 ‘터미네이터 2’의 T-1000 같은 존재다. 그는 원본을 복제할 뿐만 아니라, 원본을 없애고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 단순히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특별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원래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래서 무섭다.


흥미로운 건, 이런 식으로 정체성을 도둑 맞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우리는 대부분 침묵한다. 너무 예민하게 보일까 봐, 자기애가 강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혹은 "그 정도 모방도 감당 못 해?" 라는 반응이 돌아올까 봐.


그렇게 우리는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이게 정말 문제가 되는 걸까? 혹시 내가 오만한 건 아닐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니, 이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다. 내 말투, 내 문장, 내 경험, 내 취향이 타인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마치 누군가 몰래 내 일기장을 훔쳐 읽고, 거기에 쓰인 내용을 자기 것인 양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누군가 당신을 참고할 때, 그 끝은 복제가 아니라 대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복제는 더 쉬워졌다. SNS에 올린 글은 완벽한 복사본이 될 수 있고, 내가 공유한 취향은 버튼 하나로 다른 사람의 취향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일부가 누군가의 디지털 아바타에 흡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혹시 내 글 좀 그만 베끼면 안 될까?"
"내 스타일 따라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좀 불편해."


이런 말들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일까 봐, 혹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봐.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흔적을 지우는 모방이었고, 그 행위는 분명 불편했다. 누군가 나를 복제하려 한다는 느낌, 그것도 내 허락 없이,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거 나랑 너무 비슷한데?"
"그 경험 내가 너한테 했던 얘긴데?"
이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참고했다면 그냥 인정하는 문화가.


그리고 나는 바란다. 그들도 깨닫길. 당신이 복제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정체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예민한 게 아니다. 그저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누군가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조용히 선언한다.

"내가 예민했던 게 아니었어."


그리고 다음에 누군가 나를 베껴 쓰거든, 살짝 웃으며 말할 것이다.


"나는 복제되지 않아. 원본은 언제나 원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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