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독립선언, 유행과 나만의 기준 사이에서
“이번주 환연 봤어? 나 보고 울었잖아!"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화제였던 것은 한 연애 예능에 관한 얘기였다. 환승연애, 그러니까 예전 연인을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 예능 프로그램 말이다. 친구들이 열심히 감상평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한동안 SNS도 그렇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지만, 나는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너도 한 번 봐봐. 그거 보면 연애세포가 살아나더라."
그 말에 애매한 미소로 대답했다. 사실 볼 생각이 없었다. 남의 연애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고, 그걸 구경하는 일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말하면 뭔가 튀는 사람, 분위기 깨는 사람, 어쩌면 '재미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이건 비단 연애 예능뿐 아니라 많은 것들에서 반복되는 경험이었다. 대중이 열광하는 것들에 나만 유독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중문화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유행하는 것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굳이 그 행렬에 끼지 않는 편이었을 뿐.
친구의 추천에 못 이겨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첫 화는 흥미로웠고, 두 번째 화까지는 집중해서 봤다. 그런데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왜 이렇게 명작이라고 불리는 거지?'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봤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영상미와 음악은 훌륭했지만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다. 특히 "사랑이 중력보다 강한 힘이다" 라는 대사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과학적 접근이 돋보이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 감성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내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감상할 때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운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던 요소들이 내겐 조금 익숙한 방식으로 다가와서 그랬던 것 같다. 평소 넷플릭스 시리즈도 보기는 본다. 인기작들도 궁금하면 시청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완전히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입을 모아 '명작'이라고 할 때, 나는 그저 "볼만하다"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지금 즐겨야지!"
20대 중후반,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때였다. SNS에서는 ‘여행에 미치다’ 라는 해시태그를 흔히 볼 수 있었고, 경험을 쌓고, 돈을 아끼지 말고 다시 오지 못할 지금을 즐기라는 메시지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흐름에 합류할 여유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고,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다. 미술을 했지만 순수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전공자들 사이에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행을 전혀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1년에 한 번씩 친구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하긴 했지만, 직접 계획을 세워 떠나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걸 제외하면 해외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와중에 SNS를 보면, 친구들의 피드는 여행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즐기는 곳에 나만 없다는 기분,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 유행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쌓아가던 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대중문화와 트렌드는 어떻게 형성될까? 왜 특정 영화, 음악, 장소가 갑자기 모두의 관심사가 되는 걸까?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알고리즘의 발달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같은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것을 소비하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유행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점은, 유행을 무조건 따르려는 태도만큼이나 유행을 거부하는 태도 또한 하나의 흐름이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인기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라는 입장 역시 일종의 트렌드처럼 소비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류를 따른다고 비판받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주류를 택한다고 의심받는다. 하지만 취향이란, 대중과 같거나 다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나의 음악 취향은 멜론 TOP 100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이너한 취향도 아니다. 국내 인디부터 해외 유명 밴드, 그리고 클래식까지, 내 플레이리스트는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나만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이는 의도적으로 대중과 다르게 보이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의 취향이다.
취향은 결국 자신의 속도와 기준을 찾는 과정이다. 모두가 극찬하는 영화를 보고도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듯, 핫플레이스에 가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험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발견하는 것이다.
요즘은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유행하는 드라마도 보고, 화제가 되는 장소도 가본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내 취향과 일치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해보고, 내 기준으로 평가하면 그만이다. 때로는 대중의 취향과 일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취향을 형성하는 조각들이 된다.
가끔은 내 취향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면 주체성이 없는 걸까? 반대로,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면 그저 반발심 때문일까?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좋아하지 않는지에 있을 것이다. ‘진짜 내가 좋아서 하는 것’과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정말 즐기는 것들은 유행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나를 만족시켜 왔다는 것을. 대중이 열광하는 것들 중에서도 내게 울림을 주는 것들이 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만의 취향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취향이란 결국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10년 후에도 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만의 기준을 계속 찾아가는 여정 자체다. 남들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다양한 경험에 열려있는 균형. 그 미묘한 지점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것.
남들이 다 좋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독립적인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 여정은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결국에는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그것은 온전히 나답게 느끼고, 나답게 선택하는 법을 배우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