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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한 나

왜 기쁨은 불안과 짝을 이루는가

by 그냥 하윤

좋은 일이 생기면 나는 잘 웃지 못한다. 축하도, 환호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런 순간일수록 나는 오히려 더 침착해진다. 누군가는 무심하다고 말하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느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들여서 만들었던 채널의 구독자 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었던 어느 날, 나는 스스로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SNS에서 누군가 릴레이처럼 칭찬을 보내온 날도 마찬가지였다. 계정을 열어두는 것조차 어색해, 잠시 닫아버렸다.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을 때조차, 내 안에 가장 먼저 찾아온 건 고요함이었다.


그것은 불행의 예고처럼 느껴졌다.

'이건 오래 못 가겠지.', '이만큼 좋아졌으니, 이제 다시 떨어질 일만 남았을 지도.'

누군가에겐 자존감 부족처럼 보였을 그 반응은, 내게는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


좋은 순간 앞에서 나는 자꾸 계산을 했다. 이 기분이 언제까지 갈까. 내일 아침에도 남아있을까. 일주일 후에도 기억할까. 답은 늘 같았다. 아마 아닐 거야.




좋은 일들은 비누방울 같았다. 반짝이던 순간을 입에 담는 순간,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배운 감각이었다. 행복해하면 안 좋은 일이 따라온다. 기뻐하는 걸 티 내면 질투를 사거나, 금세 깨질 일이 생긴다. '좋아', '요즘 행복해', '이번엔 잘 될 것 같아' 같은 말은 내게 징크스처럼 작용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 세 번쯤 반복되니, 그건 어느새 내 안의 법칙이 됐다. 기대를 품고 말하면, 그 기대는 늘 빠르게 어긋났다. 마치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종종 좋은 일은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행복한 순간은 오래 품으면 안 되는 무언가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좋은 일 앞에서 먼저 준비하는 법을 익혔다. 기대하지 않기. 들뜨지 않기. 기억하지 않기.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기뻐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는 것을.


7b5c86e51a65e5258d451a5f53b7bb23.jpg 기쁨은 쉽게 꺼내 쓰기엔, 너무 금세 젖어버리는 감정이었다

사실 나의 기준은 언제나 '지속 가능성'이었다. 오래 가지 않을 것을 믿지 않으려는 마음. 좋은 순간을 피하려 한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둔 것이다.


기쁜 순간을 마음껏 누렸다가 그게 끝났을 때의 상실감은, 차라리 처음부터 느끼지 않는 것보다 못했다. 그래서 나는 무감해졌고, 그게 내 나름의 방어였다. 좋은 일 앞에서 조용해지는 것은 둔감함이 아니라 예민함이었다. 끝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시작을 조심스러워하는 마음.


비싼 옷을 사놓고도 입지 않는 사람처럼, 나는 기쁨을 꺼내 쓰는 데에 인색했다. 꺼내면 색이 바랠까 봐. 써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을까 봐.


제목-없음-5.jpg 닿지 않아 더 오래 머무는 순간들

나는 여전히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조용해진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 수 있다. 왜 이럴 때 웃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제는 안다. 나는 행복을 피한 게 아니다. 그저 그것을 아껴서, 방금 산 새 운동화처럼 아스팔트에 먼저 닿이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좋은 순간은 언젠가 끝난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 시간을 과하게 믿지 않으려 했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었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에 감정을 쉽게 쏟을 수는 없었다. 그런 태도도 나름의 방식이었다. 나는 환희를 빠르게 소비하지 않고, 조용히 곁에 두는 쪽을 선택해왔다. 눈에 띄진 않아도, 그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시도해보려 한다. 좋은 일이 찾아왔을 때, 잠깐이라도 그걸 내 것이라 인정해주는 일. 크게 반응하지 않아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그 시간을 허락해보는 것.


불안은 여전히 따라오겠지만, 좋은 순간을 밀어낼 이유도 점점 줄어든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기쁨은 사라지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내 것이었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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