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보다 몸이 먼저 알았다
스스로를 괜찮다고 단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밥을 먹고, 일을 처리하고, 밤이면 SNS의 피드를 훑어내리며 일상의 리듬을 유지했다. 그 모든 행위가 정상성의 증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고막 너머로 이상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정적 속에서도 맥박처럼 울리는 소음, 누우면 천장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착각. 그러나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예상보다 간결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봅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토록 소진시켰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복잡했지만 극적이지는 않았다. 가족 일도 있었고, 업무 피로도는 과중했고, 계획해둔 일은 줄줄이 미뤄졌다. 그러나 누군가 위독한 것도, 당장 생계가 막막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그 애매함 때문에 더욱 말문이 막혔다.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지목할 수 없는 불편함. 몸은 그러나 정확했다. 중심을 잃고 도는 현기증, 틈만 나면 고개를 드는 피로감, 그리고 점차 가늘어지는 목소리. 나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고, 대신 몸이 내 상태를 증언했다. 괜찮지 않다고, 이제 멈춰야 한다고.
몸의 이상신호를 처음 감지한 건 작년 5월이었다. 귀 안쪽의 기이한 울림과 균형감각의 교란이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병원을 전전했지만 명확한 원인은 들을 수 없었다. 단순한 피로라 넘겼던 증상들은 점점 일상을 잠식했고, 나는 잠깐의 휴식이면 회복될 거라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쉬고 싶어졌다.
어느 날은 집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다가 시야가 흐려졌고, 전봇대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귀 안은 깊은 동굴처럼 울렸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그 소리를 나 혼자 듣고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피로로 쌓였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달리다 멈춘 날도 있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숨이 가빠지고, 귀는 다시 울렸다. 운동은 거기까지였다. 의사는 당분간 운동을 중지하라 했고, 나는 그 말대로 움직임을 줄였다. 체력은 금세 떨어졌고, 몸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흔한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과로일 수도, 단순한 탈수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무해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름 붙이기 애매한 증상들이 내 일상에 들이닥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버틸 수 있다'는 감각으로 그 신호들을 덮고 있었다.
올해 초, 비슷한 증상이 다시 반복되면서 결국 상급 병원으로 옮기게 됐다. 그곳에서 또 하나의 진단명을 들었고, 여전히 원인은 불투명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명명에서 작은 위안을 발견했다. 정체불명의 고통보다는 이름 있는 질병이 낫다고 느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작년 이맘때의 나는 자신을 거의 마지막에 두고 있었다. 감정이 무디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감정보다 내가 더 둔감했다. 마음이 괜찮다고 주장할 때 몸은 이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그 신호를 가장 늦게 수신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사자인 나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고, 감정이 부재한 자리에 몸의 언어가 들어섰다. 나는 끝내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을, 몸으로 대신 살고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지금은 그 시기에서 조금은 멀어졌다. 완전히 회복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자신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분노가 일면 글로 풀어내고, 기력이 떨어지면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한때는 그런 기본적인 반응조차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조건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이제는 때로 항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중이다. 신경을 끄는 연습도 조금씩 하고 있다. 더 고요한 마음으로, 덜 강박적인 방식으로 살아보려 시도하고 있다.
그 시절은 가끔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여전히 가까운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몸이 먼저 발화하던 그 조용한 경보들. 그것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를 지탱해주던 그 무던함과 둔감함은, 결국 내가 나를 가장 늦게 알아보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나는 또다시 스스로를 모른 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 더 일찍 알아채기를, 조금 덜 늦게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결국 내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오래된 진리를 몸으로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