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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가 싫다

불편은 끄고, 공감만 켜는 시대의 우리

by 그냥 하윤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혼자다."

이 문장은 이제 밈처럼 소비된다. "사람은 믿는 게 아니다" "결국 다 혼자다" 같은 염세적인 댓글들이 좋아요 수백 개를 받으며 피드 위를 떠다닌다. 마치 정답이라도 되는 양. 이런 말들이 공감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비대면이 편하다. 전화는 싫고, 문자나 카톡처럼 천천히 생각해서 말할 수 있는 방식이 좋다. 이 모든 건 단순한 귀차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피로감에 대한 자기 방어에 가깝다. 사람을 싫어한다기보다, 지속적으로 누군가와 부대껴야 하는 구조 자체가 힘든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관계는 에너지 배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프라인은 실시간 반응과 감정 조절을 요구하지만, 온라인은 최소한의 출력으로 최대한의 연결감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낀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


이상한 건 그런 혼자들을 가장 자주 만나는 곳이 '온라인'이라는 점이다. 오프라인 관계는 끊어도, 우리는 여전히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엑스, 커뮤니티, 유튜브, 스레드… 오프라인에선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온라인에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관심 있는 주제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투명한 벽 너머로 손을 흔드는 것처럼, 안전한 거리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현대인의 새로운 사교 방식이다. 어쩌면 다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혼자가 싫은 것 아닐까.


말 없이 머무는 세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다. 관계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내 공간을 침범받고 싶지 않아한다. 그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절충안이 온라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만큼만 열고,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닫는. 일방적인 출력도 가능하고,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꺼버릴 수 있다. 꽤 유혹적인 구조다. 관계에 지쳤을 때, 가장 간단한 차단 방법이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온라인에만 있지 않다.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은 자기와 맞지 않는 관계는 되도록 피하고 만나지 않으려 한다. 불편한 대화는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은 굳이 감정 소모할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관계는 점점 더 선택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곁에 두게 되면 '내가 속한 세계가 곧 주류'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공감과 지지는 넘치지만 반대와 이견은 사라진다. 그 결과, 메타인지는 점점 흐려진다. 자기 입장을 상대화하거나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약해진다. 온라인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정확히 겨냥하지만 시야를 넓혀주진 않는다. 결국 우리는 알고리즘이 만들어준 작은 방 안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만 듣게 된다.


이런 낮은 메타인지 경향은, 사회생활 경험이 적거나 타인과의 조율을 충분히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주 드러난다. 스스로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생각이 옳고 보편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나 이견이 생기면 상대를 차단하거나 회피하는 쪽을 선택한다. 처음에는 그 태도가 자기 방어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점점 더 좁은 세계 안에 가두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나에게 좋은 말만 하는 사람만 곁에 둘 수 없다. 관계는 언제나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수반하며, 그 불편함을 통과하면서 성장도 일어난다. 온라인은 나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고립시키기도 한다. 마치 자신만의 에코 챔버 안에서 같은 소리만 들으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 안에서의 평온함은 달콤하지만, 세상과의 접점은 점점 사라진다. 고립은 그렇게,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찾아온다.


온종일 누군가와 연결돼 있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1인 사업으로 혼자 일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9년 동안 했기에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인지 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배운 게 있다. 성장은 늘 불편함을 통과하면서 온다는 것. 조율이 필요한 관계, 맥락이 중요한 대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 그 모든 것이 ’관계‘였고, 그 안에서 진짜 내가 살아 있었다는 느낌도 있었다.


요즘은 오히려 그 불편함이 좀 그립기도 하다. 완벽하게 통제된 관계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나 자신의 모습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자꾸 나에게 맞는 것만 추려내는 삶 속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날 기회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다.


온라인은 편리하다. 원하는 만큼만 드러낼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관계는 언제든 가볍게 증발할 수 있다. 그건 나도, 타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연결은 필요하다. 다만 그 방식은 시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언제나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에서만 이루어질 순 없다.


관계란 결국 불편함을 조절해가는 과정이다.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와 다른 세계에 기웃대보는 일도 삶의 균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있고 싶어하면서도, 혼자가 싫다. 이 모순이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의 솔직한 감정 구조다.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을 인정하고, 적절한 거리에서 적절한 연결을 찾아가는 것이다.


편리함은 선택이고, 고립은 무의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경계 어디쯤을 걸으며, 스스로도 모르게 선택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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