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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Oct 25. 2024

물고기 세상

내가 머물러있는 행복의 순간

내가 이 공간에 적지 않으려고 한 이야기가 있었다. 글에도 종종 등장하는 물고기. '물생활을 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사실 직접 해본 사람 말고는 이해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공감 가는 이야기만을 기록하고 싶었기에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한번 기록이나 해보자. 이 귀여운 똥쟁이들에 대해.


우리 집엔 큰 어항 2개와 작은 어항 2개가 있다. 잡탕이라 불리는 10종이 넘는 물고기들의 집인 첫 번째 큰 어항.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인 금붕어(물강아지)들의 집 두 번째 큰 어항. 여러 무늬의 새우들이 살고 있는 세 번째 작은 어항. 마지막으로는 가출팽이라 불리는 달팽이 집인 네 번째 작은 어항. 너무 많다고? 나도 신랑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첫 시작은 다O소 어항이었으니까. 그때 우리 부부가 간과한 게 있었다. 취미생활은 부부가 함께 하면 너무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아침은 새벽 6시 30분 할머니 같은 두 딸들의 이른 기상으로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바로 물고기들 밥 주기. 거실로 나오면 그 많은 물고기들이 나만 졸졸 따라온다. 밥 먹을 시간이라는 걸 아는 건지 그렇게 나를 향해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먹이를 뿌리는 순간 숨어있던 새끼들까지 다 나와 열심히도 먹는다. 그 와중에 존재감이 엄청난 우리 물강아지들(금붕어)은 내 손에 있는 먹이를 마치 받아먹 듯 쪼아댄다. 바닥에 이미 뿌려졌는데도 입을 뻐끔거리며 내 손만 졸졸졸. 그렇게 먹어대니 하루종일 쌀 수밖에.



어제저녁 작은 새우항 앞에서 물멍 중이었다. 개미보다 작은 빨간색 줄무늬 새우가 얼핏 보였다. 일단 아이들을 불렀다. 큰 새우들이 낳은 새끼 새우들은 아이들도 너무 신기해하기 때문에 꼭 함께 보곤 한다. "우와! 엄마 나도 보여!"라는 말을 반복하는 걸 보니 재밌긴 한가 보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식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잡탕들의 집을 보던 중이었다. "엄마! 여기 새끼 물고기 있는데? 쟤 누구야?"라는 큰 아이의 말에 가까이서 보니 수초들 사이에 숨어있는 새끼 물고기 세 마리가 보였다. "넌 도대체 누구니?"



며칠 간 집을 비우게 될 때면 걱정거리 최우선순위인 우리 달팽씨가 있다. 샛노란 색의 작은 달팽이가 너무 귀여워서 데려왔는데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달팽씨는 집이 마음에 안 드는지 우리가 외출만 했다 하면 가출을 해서 '가출팽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바닥부터 살핀다. 동그란 껍데기 속에 몸을 숨기고 빨리 물속에 넣어달라는 듯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여러번 가출해 봤으면 "아 물밖에 나가면 안 되는구나."정도는 깨달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 달팽씨.



늘 비슷한 질문들을 받는다. "어항 청소하기 귀찮지 않아요?" 또는 "물 어떻게 갈아줘요? 대단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푹 빠져있는 일에는 지칠 줄 모르는 게 사람이지 않나? 요즘 하루종일 먹고 자고 육아하는 것 외엔 글만 쓰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다. 물고기들은 사람기준에서 조금 더러워 보이는 물에 더 잘 살고 물생활에도 엄청나게 편리한 장비들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는 것에 행복의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엄마, 아빠가 행복해하면 아이들은 몇 배로 더 즐거워하기에 온 가족이 즐기는 물생활이 아닐까.


우리 부부는 외로운 달팽씨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다른 물고기들을 데려올까 고민 중이다. 어제저녁 함께 이야기하면서 신랑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기다리던 새끼 새우들의 탄생에 이어 또 하나의 행복한 순간이다. 글을 쓰다 보니 이곳에 물고기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던 이유가 명확해진다. 바로 내가 요즘 머물러있는 행복의 순간.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록의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나도 행복해."라는 듯 물강아지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글을 마무리 짓는 이 순간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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