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가는 지름길
누구나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는 강박. 나에게도 모든 것들의 시작점은 강박이었다. 어쩌면 우울증보다도 심했던 강박증세는 내 생활 곳곳에서 여유라는 걸 모조리 빼앗아 갔다. 그때는 몰랐다. 강박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흔한 행동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야가 어둠으로 가려져 있던 때, 강박이라는 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시간을 잘 지키는 게 뭐? 늘 하던 대로 정리해 두는 게 뭐?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뭐? 전부다 그저 스스로 만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라는 엄청난 자기 합리화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지키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나 자신에게 강박이라는 인식을 시켜준 이유였다.
늘 똑같은 생활패턴 속에서 남편도 눈치챌 만큼 강박증세는 눈에 띄게 드러났다. 바쁜 아침시간 속 소파 옆 지정된 곳에 꼭 아이들의 내복을 바르게 정리해서 둬야 하는 것, 시간은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되는 것, 방 정리는 바로바로 해야 하는 것, 자기 전 준비과정은 항상 똑같아야 하는 것 등 사소한 것들의 반복이랄까. 믿어지지 않겠지만 별것 아닌 이런 것들이 내가 우울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만 봐도 사실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여유 있게 하면 될 일들이다. 아이들이 등원한 후 내복은 정리하면 되고, 시간이야 조금 늦으면 어때? 다 놀고 나서 한 번에 정리한다고 나무라 할 사람도 없고 자는 시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나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이 지쳐가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다.
무의식 중 계속된 심리적인 압박은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모든 것에 있어 여유란 게 사라진 상태.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과 감정만의 문제라고 여겼던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말했다. 우울증보다 강박증을 치료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조금씩 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내가 만든 규칙 속에 살고 있는 건 똑같다. 옷 정리를 바로 안 한다고 해서, 약속된 시간에 조금 늦는다고 해서, 집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해서 화가 나진 않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대안을 찾고 '그럼 좀 어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마음속에도 머릿속에도 텅 빈 공간이란 게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기분, 그것이 여유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비를 맞아보겠다고 우비를 입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는 정말이지 행복했다. 강박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려하고 있는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해봐. 그게 무엇이든." 그 후엔 주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