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글 쓰는 것이 즐거웠다. 어려웠지만 속 시원하게 내 마음을 써 내려갈 수 있어서 점점 빠져들었다. 착각이었을까? 두 걸음 나아가려는 순간 한 걸음 후퇴하고 말았다. 어렵게 이 마음을 용기 내어 다시금 기록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쉽게 나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많이 나아졌다고 믿으면서 글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비우는 게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다. 무엇을 근거로 내 글 속에 더없이 솔직한 내면을 다 담았다 생각했을까? 불특정 다수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쓴 글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리석게도 읽는 사람들의 반응까지 온 신경들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각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 다를 텐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것 하나만은 숨긴 채 글을 채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좀 바라봐줘. 아직은 나를 좀 더 생각해 줘.'
그래서였을까? 즐겁고 행복한 일상만을 담아내던 글에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기록했다. 더 명확히 기억하기 위함이었고 더 짙은 반성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겉으로 본 이유였다면 내면엔 진짜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가 한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바로 인지하고 후회한다는 것이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토닥여주길 바랐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작게나마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것을 위해 낸 용기였다.
스스로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만큼 솔직히 글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 하지만 생각지 못한 반응에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것에 후회라는 자국이 남았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한 걸음 후퇴가 아닌 글을 쓰기 전 가장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날의 기록에 대한 후회가 점점 커질수록 두려움도 커져가고 있었다. 1년 동안 집에 박혀 책만 읽고 지냈을 때와 다를 것 없이 글 또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일까?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 그것의 부족으로 일어난 마음의 작은 요동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글쓰기를 멈출 생각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이 마저도 솔직한 마음을 담아 기록으로 남겨둬야 다음 글이 있을 것 같단 생각에 힘든 용기를 한번 더 내본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오늘을 떠올린다면 이 또한 내가 우울증을 이겨나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기에. 그것 하나 바라보기에도 버거운 정도, 딱 그 정도가 지금의 내가 아닐까.
나아진 모습의 행복한 일상만이 다가 아닐 것이다. 우울증이란 병을 이겨내는 과정 중 그 어떠한 것이라도 있는 그대로 나를 기록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더 이상 후회의 흔적이 남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는 아직도 마음의 병과 열심히 싸우는 중이다. 부디 너그러이 지켜봐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