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고 싶지 않은 불안함
흘러가는 세월이 유독 눈에 띄는 날들이 있다. 뼛속 깊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면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내 마음에 싹을 틔운다. 마치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오듯이 말이다. "나 아직 잊은 건 아니지?"
이상하리만큼 평온하고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중이랄까. 큰 의미 없이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제각각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예를 들어 하나둘씩 생겨나는 흰머리, 더 자주 아파오는 허리 통증, 약해지는 다리, 피곤함이 얼굴에 스며들기까지의 시간, 저조한 체력 등. 하지만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내가 느끼는 큰 행복감에서 나오는 불안감이라는 사실을.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러워지기란 쉽지 않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던 내가 일상의 행복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그랬을까. 친정 식구들과 함께 많은 아이들로 가득한 공원을 갔을 때였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본 내 시야엔 훌쩍 지나버린 시간의 한 장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예전의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구나.' 그때 나를 꿰뚫어 보는 듯 이모가 한 마디 했다.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것들이야. 괜찮아."
1년 전보다 확실히 살이 찐 아빠의 모습에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약해진 다리와 허리의 통증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불안감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면서 말이다. 더 이상 불안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순간적이지만 어느 때보다도 명확한 생각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자.' 우습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평범한 것일수록 제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을 이겨내면서 알게 된 가장 큰 사실이었다.
시종일관 손녀들과 정말 행복하게 웃는 아빠의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온 세상의 에너지를 다 끌어안고 사는 듯이 바쁜 엄마의 활기찬 모습으로 눈을 돌렸다. 건강하게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여전히 시원하게 욕을 날려주시는 우리 용순 씨에게 눈을 돌렸다.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들보다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들부터 바라보기로 한 것. 시간이 흐르는 것에 존재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잃지 않으려 한 노력이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연습의 첫 단계였다.
언제라도 숨어있던 불안증이 또다시 존재감을 내비칠 것을 안다.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이 더 먼저 눈에 띌 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한낱 감정에 불과한 것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자연스러운 것에 익숙해지는 법, 그리고 흘러가는 것들의 당연함을 인정하는 법 등이 앞으로의 1년간 스스로 해야 할 숙제이지 않을까.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 누구나 같은 상황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연스레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