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i Nov 13. 2024

그녀와의 밥 전쟁을 선포한다

6살 이기기 대작전

어제 저녁 식사 중 작은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늘 똑같이 말이다. 평일에는 하루 두 끼, 주말에는 하루 세끼 꼬박 그녀와 싸운다. 아니 일방적으로 혼나는 거지. 라면 먹을 때만 빼고.


메뉴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식사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뾰로통한 표정의 작은 아이는 마지못해 수저를 든다. 겨우 한 숟가락을 먹고 난 후 가만히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왜지?). 나는 이야기한다. "밥 먹어야지?" 그 후 그녀는 또 한 번 먹고서 다시금 깊은 명상에 빠진다(대체 왜지?). 점점 화가 나는 엄마의 목소리 톤은 높아지기 시작한다. "밥 안 먹을 거야?" 이때 쯤이면 엄마의 기분을 알아차린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엄마,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과장 1도 보태지 않고 매 끼 이 과정을 반복한다면 믿겠는가? 나도 안 믿기는데 말이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공통점이 있다. 유치원에서는 스스로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명상의 시간 또한 없다. 작은 아이는 붉은색의 양념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연신 맵다며 물을 들이켠다. 하지만 그것이 라면일 경우 달라진다. 짬뽕부터 시작하여 안O탕면, 로제 불O 까지 먹어본 경력의 소유자가 바로 그녀이다. 내 딸이지만 막강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와 같은 과정이 지나면 6살과의 합의가 시작된다. 분명한 것은 처음엔 통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 밥 안 먹으면 자기 전까지 간식 없어. 물만 마셔야 해(다소 극단적임)." 요즘의 그녀는 이렇게 반응한다. "응(1초 만에). 안 먹어도 돼." 세상 쿨한 그녀를 뒤로한 채 내 마음속에서는 스스로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고작 6살 된 아이에게 지고 싶지 않은 치졸한 마음과 밥을 남겼으면 과일이라도 영양을 보충해줘야 할 것 같은 엄마의 마음, 이 두 가지가 치열하게 싸운다. 과연 어느 쪽이 이겼을까?


문득 한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식을 키우는 데에 있어 부모는 자식 상투를 잡든 시종이 되든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실상 그 말이 확 와닿는 경우는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시종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어떻게 하면 상투를 확 잡을 수 있을까 만 고민했기 때문이다.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엄마 화를 풀어주겠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꿈쩍하지 않았던 모진 엄마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언니의 도움을 받아 색종이에 적어온 편지에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곳에 적혀있던 한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저를 혼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내 무릎에 앉은 작디작은 아이를 안고선 조심스레 물었다. "혼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혼나면 다시 기회가 생기니까 언니한테 그렇게 적어 달라고 한 거야." 그 순간 지금까지 내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에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마음에 병이 생겼다는 핑계로 너무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릇에 단감을 담아 아이에게 주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가 냉큼 포크를 들더니 한마디 한다. "괜찮아 엄마. 그래도 먹을 순 있으니까." 역시 보통 아이가 아니다. 평화로운 결과로 마무리 지은 밥 전쟁이 처음이었기에 바로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고 있는데 큰 아이가 다가온다. 지금까지 쓴 글을 보여달라는 아이의 말에 잠깐 멈추었다. 글을 읽은 큰 아이가 말한다. "근데 엄마, 혼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내가 쓴 건데? 내가 쓴 거 맞는 것 같은데?" 순간 정적이 흐른다. 아무래도 상투를 잡기는커녕 시종이 되지 않기만을 바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주 보고 있던 작은 아이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이전 15화 세월의 흐름에 익숙해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