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하고 따뜻하게
결혼한 지 벌써 9년 차. 내 가정을 이루고 한 번씩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마음속 걸리는 것이 많아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던 생각. '친정에 가서 온전히 딸로서 혼자 쉬고 싶다.'
친정을 방문하는 것에 낯선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본다. "아이들 키우면서 혼자 친정에 가서 쉬기 위해 자고 온 적 있어요?" 과연 대답은 뭐라고 할까? 쉼이라는 목적으로 혼자 친정을 방문한다라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말이다.
하루는 다 같이 친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잠깐 들른 것이기에 신랑과 아이들은 차에서 기다렸고 혼자 친정집으로 향했다. TV를 보고 있던 아빠, 주방에서 요리 중이던 엄마, 그리고 막 일을 마치고 쉬고 있던 오빠까지 모두들 나를 보는데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마치 결혼 전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반가웠던 걸까? 이 모습 또한 그리웠던 걸까? 이후 내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제자리걸음 중이면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지쳐가던 때였다. 신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혹시 쉬고 싶으면 주말에 친정가서 하루 자고 와. 아이들은 내가 돌보면 돼." 정말 가볍게 큰 일 아닌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고 오라고? 혼자?"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려 물었다. 평일 내내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본인도 쉬고 싶을 텐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언제 친정을 갈 건지 날짜를 잡을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진심으로 내가 가서 쉬고 왔으면 하는 사람처럼.
그렇다. 신랑 자랑이다.
드디어 혼자 친정을 갔을 때,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따뜻한 물을 받아 느긋하게 목욕하고 나오니 차려져 있는 엄마 밥상을 시작으로 다 같이 TV 보면서 야식으로 치킨도 먹고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늦잠이란 것도 잘 수 있었다. 9시 이후에 일어난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났었으니까. 근데 이상하다 여길 만큼 신랑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내가 아무 걱정 없이 그냥 온전히 즐기다 오길 바랐을 것이기에 나 또한 연락하지 않았다. 한 통의 문자도.
친정이라는 곳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엄마라는 스스로의 존재감이 너무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엄마, 아빠의 딸로 마냥 어리광 부리고 싶은,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되고 싶기도 하다. 엄마에게도 쉼은 필요하다. 엄마에게 쉼이란 친정엄마라는 그늘 아래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포근하다 느낄 것이다. 쌀쌀한 겨울 바람에도 가족과 함께한 시간에 온기로 가득했던 오늘 날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