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궁금증에 끝이란 없다.
'부모의 개입이 어디까지 필요한 걸까?'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유치원생활부터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던 질문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 건 마찬가지. 육아에 쉬운 건 없다지만 이렇게 불분명한 게 또 있을까?
우리 부부의 육아 방식은 나름 개방적이었다. 늘 말해왔던 것처럼 넓은 울타리 같은 엄마의 육아방식을 따라 한 것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했던 사실은 아이의 성향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7살 무렵 내가 가장 많이 개입했던 건 아이의 공부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무조건 한글을 배우고 수학도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초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차분한 성격의 아이는 내가 바라는 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한글, 수학 학습지에 기본 문제집만 각 하나씩, 거기다 아이가 원해서 하는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시작한 독서기록장까지. 예비 초등학생이 매일 하기엔 너무도 벅찬 일정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나 스스로가 아이 교육에 있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여러 책들을 읽어가며 진행한 방식이었기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아이 성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서 내가 낼 수 있는 시간 모두를 글을 고민하는 데에 보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아이의 교육에는 관심을 놓게 되고 오로지 숙제를 하는지 안 하는지 정도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집중하는 건지 어떻게 풀고 있는 건지 확인조차 못했을 시기부터 아이가 매일 푸는 학습지의 오답률은 줄곧 '0'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간섭을 안 하니까 아이가 문제를 잘 푸네요?" 내가 학습지 선생님께 매주 했던 말이었다. 우연이었을까.
그렇다고 여태껏 품고 살아온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건 아니었다. 공부 다음으로는 아이의 친구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어려운 만큼 내가 애초에 개입을 많이 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좋고 싫음에 미숙했던 때에는 '보호'라는 이름하에 부모의 개입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는 채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내면 또한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큰 아이는 독서기록장에 자신이 친구와 싸운 경험을 토대로 적은 글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었기에 놀란 마음을 애써 숨기며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어? 근데 무섭다고 적었네?" 아이는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친구가 화내서 무섭긴 했는데 괜찮아. 싸우면 화해하면 되지. 원래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는 거야." 가끔씩 뼈 때리는 말로 나를 놀라게 하는 큰 아이지만 이 정도로 생각의 폭이 넓어져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큰 아이일지라도 나에게는 그저 아기니까.
이것이 모든 것에 보호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바뀐 시점이었다. 아직 잘 모르는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 잘잘못은 알려주되 그 이후의 선택은 오로지 아이에게 맡기자고 결심했다. 물론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진 않았다. 시종일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살폈다. 아이가 당연히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매일같이 똑같은 질문만 하기도 했다. 물론 큰 아이는 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동시에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하나에 소름이 끼쳤다. '매일 하는 질문으로 아이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나의 깨달음에 다음 단계의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육아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모든 아이들의 성향이 제각각이기에 정답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 아이의 말처럼 싸우면 화해하면 될 일.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했을 경우에도 그 잘못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내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된다. 아이가 친해진 친구들까지 엄마의 선택으로 이리저리 휘두를 순 없는 일이다. 적어도 8살인 지금의 아이에게는 말이다.
부모가 알려준 가장 올곧고 빠른 길을 따라간다고 해서 그 길만이 지름길은 아닐 것이다. 꼬불꼬불 장애물이 가득한 길일지라도 스스로 겪으면서 배워나가야 할 과정이라면 장애물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 이제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아이를 굳게 믿어 줄 차례이다. 언젠가 한 단계 성장해 있을 아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