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필요하지 않아.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누구나 겪는 일이야.”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지옥스러웠길래 나는 이 말을 이토록 외치고 싶어 했을까?
바쁜 엄마가 갑자기 불렀다. “심리상담 같은 거 있는데 한번 받아볼래?”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이었기에 아니겠지 하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스스로는 내 감정과 마음을 아주 잘 감추며 살아왔다고 자신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가 이전에도 말했던 진정한 ‘다정한 관찰자’였다. 엄마 또한 내가 모르게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살펴보고 있었던 것. 내 안에 무엇인지 모를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나를 상담센터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
상담사와 둘만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 안에 있는 무엇이든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 너무도 낯설었던 나에게는 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건드려선 안 되는 마음속 문제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전문가랍시고 툭 하고 건든 느낌이랄까? 다 털어내는 중이라고 그래서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상담 1회 차, 2회 차 지날수록 폭탄을 건드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때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상담센터에서 다 털어놨으니 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내가 가진 아픔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상담결과를 같이 들었던 엄마부터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와 유일하게 상담내용을 전해줬던 신랑까지. 하지만 그 오만한 생각이 칼이 되어 나를 찌를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든 걸 들은 직후 신랑은 말했다. “근데,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쁜 건 아니지 않아?” 그리고 상담결과들 들은 후 2회 차 상담 때 엄마는 말했다. “상담센터 이제 안 가도 되지? 필요하면 말해.” 둘 중 어느 누구도 내 의사를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한 문장이 깊게 박혀있었다. ‘전문가가 내 상태를 안 좋다 말하는데 왜 그들은 가장 먼저 내 생각을 물어보질 않는 걸까?’라고 말이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다. 가족모임에서도 스스로를 제삼자라 여기며 늘 나를 제외한 시선으로 행복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미소와 즐거움이 나에겐 상처로 다가왔다. 내 머릿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지워지기 시작했고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하고 신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러한 상황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불분명한 이 마음의 병을 그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싸우기만을 반복하던 그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어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우울증은 주변인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거라며?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어떻게 그걸 몰라볼 수가 있어?”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신랑은 내 손을 꽉 잡았다.
병원의 도움을 받아 아주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내 시야도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나에겐 너무나 감추고 싶은 아픔의 과정을 최선을 다해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아니다. 맨 처음 언급한 것과 같이 우울증은 절대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이 공간에 기록한 대부분이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뒤로 물러설 생각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용기를 내길 기다리는 거면 타인의 생각과 말로 위로를 삼는 것보단 스스로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당당히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로 한 선택 말이다. 나 또한 이곳에 기록한 어두운 글들을 누군가 읽어줄 거란 확신은 없다. 불특정 한 다수가 읽어주길 바라며 쓴 글인 건 맞지만 내 아픔에 직면해서 써 내려간 순간부터 마음속 변화는 시작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유별난 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곪아 병이 생긴 사람들은 세상에 많고 많을 것이다. 이곳에 점점 솔직한 기록을 남기면서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처럼. 주춤거리더라도 뒤로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며 털어놓지 말고 일단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 그것을 첫걸음 삼아 하나둘씩 이야기하다 보면 우울증이라는 병은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벼이 변해있을 것이다. 마치 휙 하고 날아가버릴 깃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