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오늘에 감사하다.
두 눈을 뜨게 만든 건 아침 햇살이 아닌 저녁 같은 어둠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촉촉이 젖어있는 땅에 회색 구름만 가득한 하늘, 비 내리는 11월의 첫날이 밝았다.
아침 7시라고는 믿기지 않는 흐린 날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게으름이 밀려온다.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내 몸도 카페인에 무릎을 꿇은 건지 요즘은 커피 1잔에도 잠을 못 잔다. 눈을 뜬 건지 감은건지 모르는 상태로 거실로 나오니 큰 아이가 묻는다. "엄마 못 잤어?" 대답하진 못했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응. 네 동생이 옆에서 굴러다녀서 못 잤어.'라고 말이다. 정작 작은 아이는 아주 개운해 보였다.
이런 날씨면 대부분의 주부는 상상한다. 아이들 모두 등원시키고 침대와 한 몸이 되겠다고. 적당히 쌀쌀한 날씨에 바깥은 흐린 구름으로 가득하고 폭신한 이불로 온몸을 돌돌 말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은 참 별 것 아니다 싶은 순간, 내 머릿속엔 오늘의 개인운동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내일 되면 귀신같이 쌤은 물어볼 것이다. "회원님. 어제 운동 갔어요?" 꼭 운동 안 갈 때만 물어보는 무서운 사람.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인센스를 켠다. 오늘은 우드향이 좋겠다. 조용한 어항 물소리만 가득한 집 안 공기가 내 마음까지 평탄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운동복이 아닌 보들보들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귀차니즘이 밀려와도 글은 쓰고 싶어서 노트북이 아닌 핸드폰을 켰다. 분명 켠 것 같은데 시간은 1시간 넘게 흐른 뒤였다. 역시 침대 위에서 글을 쓰겠다는 건 자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무슨 글을 써볼까 생각하다 이렇게 게으름으로 가득한 날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는 거지. 근데 뭐 어쩌겠는가? 시간은 이미 흘렀고 가만히 있는 그 시간 또한 좋았다면 된 거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왜 이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살아? 안 피곤해?" 맞다. 흐르는 대로 놔버리는 것 또한 익숙해질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올해 내가 얻은 교훈이지.
오늘 같은 날은 육퇴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최고일 것이다. 운동도 안 가고 하루종일 뒹굴거려 놓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어이없게 웃기다. 방금 전 글을 쓰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너무도 소박한 하루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상황이 주는 평범함에 내 마음속 편안함까지 모든 것이 보통인 오늘에 다시 한번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