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ngry Traveller Mar 20. 202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행히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일주일치 일기예보를 보며 달릴 수 있을 때와 달릴 수 없을 때를 미리 점쳐보곤 한다. 특히나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던 작년 여름이나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엔 달릴 수 없게 하는 자연현상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같이 좀처럼 비나 눈이 내려주지 않는 때에는 내 다리가 눈치 못 채게 속으로 은근히 비를 기다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오늘은 많이 피곤하니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핑계를 대 보지만 샤워를 마친 후의 내 다리가 어서 밖에 나가서 한탕 뛰자 재촉하는 통에 사실 날씨 아니면 달리기를 나가지 않을 핑곗거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2020년 여름 폭우로 통행이 차단된 잠수교

작년 겨울, 해외파견 일자리를 지원하고서 많이 망설였다. 합격여부도 알지 못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에 가면 치안이 좋지 않고 길댕댕이들이 많아 아침 달리기를 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 나라에서 히말라야 산을 보겠다며 새벽 6시에 동네를 산책하던 때 들려온 개들의 발자국 소리. 와다다다 마치 말발굽이라도 단 듯 그렇게 우렁차게 5-6마리가 떼를 지어 달려와서 나를 둘러싸 짖어대며 위협하고 살짝 물으려는 시늉까지 했던 개의 털로 둘러싸여 푹신하고 사실 조금 귀여웠던 입가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어쨌든 아주 멋진 기회였지만, 사실 결국 2차 면접에서 불합격을 하고 말았는데 그래도 아침마다 한강을 따라 달리기는 계속할 수 있겠구나 하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무척 아쉽다).


그만큼 나는 달리기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침 출근 전 달리기 시작한 지 5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평생 살면서 아침형 인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5.50 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간단히 씻고 운동복과 조깅화를 신고 어두컴컴한 거리를 조심스레 나서면 한강 변 즈음에서 동이 텄다. 어렸을 적에 인상 깊게 봤던 영화 록키에서 그와 같은 회색 후드 점퍼를 걸치고 한강에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 싸구려 운동복을 뒤로하고 세일해서 5만 원 하는 운동복을 구입하고 구멍 난 스니커즈를 버리고 러닝화에서는 싼 축에 속하는 신발도 6만 원을 주고 장만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뛰기 무거워 애플 워치와 그에 걸맞게, 원래 있던 에어팟은 자꾸 귓구멍에서 빠져 에어팟프로까지 끼고 제법 갖추고서 달리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법이라던가 그런 것도 알지 못했다. 블로그를 찾아보면 어떻게 달려야 한다, 자세는 어떤 게 좋고 얼마나 몇 시에 어떻게 입고 달려라 했지만 한 번 대충 읽어보고 그냥 나대로 달려보자 했다. 그런 이론들을 찾아가며 머리에 넣고 달리고 싶지 않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마음대로 달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새벽에만 볼 수 있는 한강 풍경

스스로 멋있다고 느껴지는 운동을 하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 나는 내가 달리면서 스스로 멋지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한강 주변을 어슬렁 혹은 빠르게 걷는 사람들을 하나, 둘 재쳐가며 달리는 기분이란 무언가 이겼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아니 그 보다 먼저, 달리기를 할 줄 알기 전에 걷고 있는 나를 스쳐가며 뛰던 사람들을 멋지다 라고 느꼈기 때문에 달리는 나도 멋지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같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런닝화를 구입했다.

맨 처음 달리던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그때는 무더운 여름이 막 시작하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베트남에서 산 싸구려 운동복 바지에 싸구려 반팔 티셔츠, 게다가 바닥이 얇은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어색하게 달려보고 있었다. 처음이라 100-200m 정도 뛰다가 숨이 차서 멈추고 또 달려보고 하다가 드디어 잠수교 입구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때 내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시작된 음악은 데이식스의 Dance Dance 였다. 잠수교는 뭐랄까 길이 좁고 사람에, 자전거에, 차까지 함께 지나가는 다리였기 때문에 뛴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 어쩌지, 나의 달리는 폼은 멋있을까, 또 몇백 미터 달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할 텐데 그 모습이 너무 초보자 같아서 창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데이식스가 이렇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셋! 나 오늘 놀래 달려볼래, 남이 뭐라든 신경 끄고 마이웨이"


그리고 나는 데이 식스의 주문에 홀려 달리기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에 오리 떼가 날고 있었고 그 장면과 느낌은 아직도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 달리지 않을 때도, 아직도,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그 여름에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늘 데이식스의 음악을 함께 했다. 달리기를 응원해 준 응원가 같이 늘 함께.

그렇게 첫 달리기를 인상 깊게 경험해 보고는 주말을 기다려 다시 한강변으로 갔다. 금요일 밤에는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와서 장비를 갖추고 걷다 내가 뛰기 시작할 지점인 잠수교가 보이면 우주인의 관점이 되어 이것이 지구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인가 하며 두근거리고 벅찬 가슴을 달랬다. 그러다 아무래도 주말만 달리는 것이 부족하단 생각에 주 중에 2~3번을 더 달려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어쩌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새벽같이 일어나 좀비처럼 매일 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지 이제 8개월째. 비나 눈이 오거나 혹은 몸이 아주 안 좋거나 할 때를 빼고는 매일 달렸다. 조금 부지런을 떤 날에는 한강에 웅장하게 명화처럼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었고 아침밥을 먹으러 떼를 지어 날아 잠수교 왼편에 착지하여 아침밥을 챙겨 먹는 오리 떼를 볼 수 있었다. 간혹 내가 오리들보다 먼저 한강에 도달해서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잠수교를 달리고 있으면 오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강 위로 차례차례 착지하며 질서 있게 앉아 있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오늘은 왠지 힘들 하루가 될 것 같아 출근하여 처리할 업무를 머리에 떠올리며 달리기도 했고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는 마음가짐을 다잡는다고 평소의 평균 속도를 30초 이상 빠르게 달리기도 했다.

이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끼워 넣어야 할 것 같다. 하루키는 달리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즉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종종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마 나도 오랜 시간을 아직 달리지 못한 모양이다 싶다. 하루키처럼 공백 속을 달리고 있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요즘도 달리면서 주로 희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다행히 긍정적인 고민 쪽에 가깝다. 사실 내가 지금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 때문이다. 막연하게 달리는 것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책을 읽자니 나의 달리기에 교정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키에 의하면 그는 매일 1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고 했고 나는 그가 매일 10km를 달린다는 사실보다 매일 뛸 때 몇 킬로미터가 되었든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쩌면 달리기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나 싶었다. 물론 나이키 어플이 깔린 애플 워치를 차고 달리기 때문에 그 날의 속도, 거리, 시간, 심장박동수까지 매일매일 확인은 하지만 여태껏 쉬지 않고 달려본 적은 없었다. 매일매일 기록되는 나의 달리기 기록은 어쩔 때는 쉰 시간에 달리기 어플을 멈춰서 달릴 때의 기록만 남아 있는 때도 있고 아니면 집에서 나와서부터 다시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즉 걷다가 달리다가 쉬다가 했던 모든 일정의 기록이 성의 없이 합쳐져서 남아있기도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빼고 순수하게 달리기만 했던 날의 기록을 보니 나는 주로 매일 고작 3km만을 뛰기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것도 1km마다 1-2분을 쉬어가면서 말이다. 달리기 어플의 기록이 너무 간결하지 못해서 사실 기록이라고 하기도 뭐해 8개월 간의 달리기 역사를 다 지워버리고 싶은 감정에 휩싸일 정도로 나의 달리기에 대해 재정비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나의 달리기의 패턴을 갈아치웠다. 5km를 쉬지 않고 달려보기로 했고 그 결심을 실행한 것이 바로 어제 아침이다. 5km를 달리기 전에 늘 그렇듯이 집에서부터 1.1km 정도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소요하며 한강에 도달했다. 그 10분 동안의 시간에도 고민에 휩싸였다. 그냥 평소대로 3km를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려볼까, 잠수교에는 왕복해서 100m의 오르막이 있어 더 운동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리고 잠수교를 달리는 그 짜릿함과 오리 떼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각각 50m의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나는 지금껏 1km 달리고 쉬고 했던 것도 같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결국은 용기를 내어 오르막이 심한 점수교 통과를 포기하고 평탄한 한강변 5km를 쉬지 않고 달려보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총 267 페이지고 나는 현재 그의 책의 86페이지의 중간쯤까지 읽은 상태이다. 따지자면 1/3도 채 읽지 않은 거라 아직 그의 책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처지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2005년의 하와이를 달리면서 1960년대 음악을 시디플레이어로 듣는 하루키의 감성을 따라가고파 애플 워치에 넣은 하루키의 애창곡을 불렀다던 러빙 스푼 풀의 노래는 나의 애플 워치에 담겨는 있지만 아직까진 달리면서 듣진 않았다. 산책을 나가면서 살짝 들어봤는데 아마 나는 하루키에 비해 다분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건지 아무래도 더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달리는 모습을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림자를 찍었다

어쨌든 나의 첫 '쉬지 않고 달리는 5km'는 성공리에 끝이 났다. 평균속도 6.39분에 소요시간 33:28분에. 사실 그 동안 3km를 두번 쉬어 가면서 걸린 평균속도는 6.25분에 소요시간 21분 정도. 나로서는 속도를 내고 어느 정도 힘껏 달린다 생각했는데 쉬지않고 달린 5km와 큰 차이도 없다. 허무하긴 했으나 그래도 그동안 8개월째 달린 3km의 위력으로 쉼 없이 5km를 달리는 데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가 10km를 달리는 것이 그의 일상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다 했던 것처럼 다행히 매일 오르막이 100m를 차지하는 3km를 8개월째 달렸더니 나한테도 그 쉼 없이 달린 5km는 무리한 도전이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있어 '달린다'는 것은 문학과 삶을 향한 치열한 도전이었다! 라면 아직 달린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달린다'는 말을 정의하긴 어렵다. 다만, 매일 아침이 즐겁게 다가온다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계속해서 달리면서 '달린다'에 대한 정의가 계속해서 바뀌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중 걷고 또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